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Mar 14. 2017

Youth -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왜 찍는 것인가" 라는 뜬금없는 의문과 함께

약 1년 만에 디뮤지엄의 전시를 보고 돌아왔다.



지난 해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개관 특별전으로 열렸던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 전시 이 후에 크게 마음을 잡아 끄는 전시회가 없었다. 그러다 메일로 날아온 디뮤지엄의 소식지에서 'Youth -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의 전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청춘 만화, 청춘 드라마 등 청춘의 느낌을 간직한 것들을 좋아하기에, 이 전시회도 끝나기 전에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Youth culture를 테마로 하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 간간히 작품을 접하며 좋아했던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도 볼 수 있다는 말에, 날이 따뜻해진 주말, 집을 나섰다.


본격적인 전시의 감상평을 남기기에 앞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청춘'은 '풋풋함'을 지닌 것들이다. 청춘이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과 정의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를텐데, 내가 좋아하는 건 푸른 하늘과 청량한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떠다니는 듯한 그런 이미지였다. 마냥 맑고 청록의 잎사귀들과 햇살이 내리쬐는. 아마 이건 그간 봐온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청춘 만화는 '너에게 닿기를' 이전에도 '허니와 클로버'가 있었고, 영화를 꼽아보자면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다. 풋풋하고 보기만 해도 설레이는 것이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회는 애초에 그 부분이 달랐다. 그래서 새로웠다.



Soar, Palermo, 2016, Courtesy of Paolo Raeli

(참고: 파올로 라엘리의 홈페이지 http://paoloraeli.com/archive)



'Youth - 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 전시의 메인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는 위 사진은 확연하게도 내가 위에서 서술한 청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어스푸레한 하늘은 해가 뜨려고 하는 것인지, 지고 있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파올로 라엘리의 사진 속 청춘은 대부분이 이러하다. 아주 모호하고, 순간적이다. 확실하지 않아서 청춘인가, 싶어진다.


어쨌든 이 메인 이미지 한 장이 뇌리에 박혀 전시를 보러 가야겠다 다짐했었고, 전시를 관람하고 나서는 이 이미지가 전반적인 전시의 컨셉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러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있었지만,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파올로 라엘리(Paolo Raeli)와 디아나 템플턴(Deanna Templeton)과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의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다. 파올로 라엘리는 메인 이미지와 같은 컨셉의 다양한 사진들을 통해서 명확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Youth culture를 담아내고 있었고, 그 뚜렷함이 좋았다. 디아나 템플턴의 작품들은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빛과 요동치는 물결로 더욱 아름답게 나타내어 눈길을 끌었다(The Swimming Pool 시리즈). 몇 번이고 되돌아서서 다시 보게 만드는 그 오묘함이 마음에 들었다.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들도 그랬다. 한 눈에 보아도 압도적으로 마음에 닿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족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의 작품은 명확하게 청춘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청춘들의 모습을 품은 자연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




Lucy, 2012, Courtesy of Deanna Templeton / Ivy (Bubbles), 2015, Courtesy of Ryan McGinley





많은 청춘들의 발걸음 속에서 생겨난 의문.
우리는 왜 찍을까?


전시회는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나름대로 사람들을 피한답시고 오전에 가봤지만 늘 그렇듯 나보다 빠른 사람들은 많았다. 전시장 내부에서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찍거나, 청춘을 표현한 작품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함께 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전시장은 요즘의 트렌드를 보여주듯, 네온사인과 소위 말하는 '힙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며, 특별하기를 원하는 청춘들이 열광할 만한 공간이었다.


28명의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로 꾸며진 공간은 분명 완성도가 높았지만, 작품을 즐기기도 전에 앞뒤양옆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리다보니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대충 훑어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쉬웠다. 관람객들이 다니고 있는 길에 몇 분 동안 멈춰서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겨났다.


'찍는다'는 행위는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핸드폰을 고르는 기준의 꽤 많은 부분을 카메라의 '화소'가 차지하기 했던 시점부터, 우리는 찍는다는 행위에 열광했다. 이러한 열광은 SNS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더 높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먹기 전에, 새로 산 물건의 포장을 완전히 뜯기 전에, 여행지를 지나치기 전에 '인증'샷을 남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는 행동들을 의식적으로 남기고,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게 이제는 일상이다. 너무나 쉬운 답이 이미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왜 찍는 것일까, 에 대한 궁금증이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들었다. 전시된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작품과 함께 있었다, 를 증명하고 싶어서인가? 라는 의문이 들면서 궁극적으로 사진을 남겨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뭐지? 라는 생각도 들고. 어찌보면 정답은 '기록' 그리고 '추억'을 남기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명쾌하게 해소가 되지 않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생각보다 전시회를 둘러보는 건 빠르게 끝났지만, 집으로 돌아와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찾아보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니 전시회가 또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와닿았다. 전시회에서 작품은 어떻게 감상해야하나,하고 그림 앞에서 멀뚱히 서서 보기만 했던 나에서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가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또 다시 새로운 전시를 보러 나서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생민의 영수증'이 의미있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