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포인트를 뽑아보자!
나는 추리 예능 덕후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꼭 예능이 아니라도 추리라는 장르가 들어가면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일단은 다 챙겨봤으니 그냥 추리 장르 덕후라고 해두자.
아무튼 최근 내 하루는 온갖 추리 예능으로 점철되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잠시 휴방 중이긴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탈출> 시즌3가 시작했다. 매회 레전드를 거듭하는 덕에 재방에 삼방까지, 아주 야무지게 챙겨본다. 거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인 <범인은 바로 너>의 시즌2가 공개된 것을 최근에야 발견해서 (이럴 수가..) 순식간에 정주행을 마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앞의 텔레비전에서는 <대탈출> 시즌1 폐병원 편이 방송되고 있고, 이렇게 추리 예능을 몰아보다 보니 나의 최애 예능 크라임씬이 문득 떠올라 새벽에 또 보고야 말았다.
세 가지 예능은 비슷한 듯 다르다. 저마다의 색깔이 뚜렷하다. 코로나로 혹은 다른 이유로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추리 예능, <크라임씬> <대탈출> <범인은 바로 너>에 대해 소개하고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름대로의 '짬'으로 관전 포인트도 한번 뽑아봤는데 부디 나의 영업이 성공하길 바라며...
태초에 추리 예능의 시작에는 크라임씬이 있었다. 2014년 시즌1로 시작해 시즌3까지 제작되며 많은 폐인들을 양산한 JTBC의 예능이다. 롤플레잉에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어찌 보면 가장 정통 추리 예능이라 볼 수 있다. 제목 그대로 '범죄 현장'에서 플레이어들은 범인을 비롯한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들은 범죄 현장으로 꾸며진 세트 안을 오가며 단서를 찾고 이를 조합해가며 범인을 추리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시즌을 거듭하면서 오리지널 스토리들도 많아졌고, 그러면서 스토리의 완성도도 더욱 높아졌다. 디테일한 단서와 제대로 만들어진 현장 세트까지 흠잡을 곳 없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고 애정하는 예능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추리를 끝낸 후 플레이어들은 범인에게 투표를 하고, 범인을 맞추는 경우에는 플레이어들에게 상금이 적립되고 범인을 맞추지 못하면 범인에게 상금이 적립되는 형식이었다. 반응이 좋아서 이후에는 중국에 포맷을 수출해 '명성대정탐'이라는 이름의 예능이 방영됐고, 크라임씬 컨셉의 방탈출 카페도 서울에 만들어졌다.
크라임씬의 관전 포인트
<빵빵한 게스트들과 출연자들의 훌륭한 연기력>
<콩트와 스릴러를 넘나들면서도 놓치지 않은 높은 몰입도>
<단서를 두고 벌이는 난상 브리핑>
먼저 크라임씬은 의외라면 의외로 볼 수 있는 출연진들이 등장한다. 시즌 1에서는 임방글 변호사가 플레이어로 등장했었고, 시즌 2와 3에는 장진 감독이 플레이어로 등장했다.(장진 감독님!!!!) 거기다 게스트로 표창원 프로파일러와 현직 형사님도 등장한다. 좀처럼 예능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군(?)의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예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스트들도 꽤 등장하는데, 빵빵한 게스트들과 플레이어들의 연기합을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진지하게 범인을 추리해 나가면서도 놓치지 않는 예능 정신 또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 크라임씬의 터줏대감이자 추리여왕인 박지윤 아나운서는 크라임씬에서 천직을 찾은 것처럼 감초 연기를 선보인다. 역대급 캐릭터 박재즈, 박요염, 박강남 등.. 캐릭터들의 이름만 대도 에피소드들이 머리에 떠오를 만큼. 어디 이뿐이랴, 하선녀, 장책방, 홍상회, 사카린쨩을 부르짖던 김순진과 시가수와 미쓰소 등... 엄청난(?)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다들 어쩜 그리 캐릭터들을 찰지게 소화하는지,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캐릭터들을 읊고 싶을 만큼 출연자들의 몰입도가 높아, 보는 시청자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했다.
1차로 단서를 찾고 나서 한 명씩 브리핑(하며 저격하는)하는 시간도 포인트 중 하나다. 단서를 통해 날카롭게 추리를 하는 한편 캐릭터에 맞춘 찰떡같은 상황극과 꽁트들 덕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추리 장면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수많은 명장면들이 탄생하고.
여전히 나는 크라임씬 시즌 4를 소원하고 있다. 아마 나 같은 애청자들이 한 둘이 아니리라. 얼핏 듣기로는 시즌 4는 제작 예정이 없다고... 했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 부디 내가 잘못 들은 이야기이길 간절히 바란다.(ㅠㅠ)
요즘 나의 일요일을 책임지고 있는 예능, 대탈출. 방탈출 게임의 어마어마한 확장판이다. 방탈출에 스토리적 요소가 가미된, 더지니어스로 유명한 정종연 pd의 연출작. 평소에도 방탈출을 좋아해 대탈출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기대를 많이 했다. 또 워낙 예능에서 짱짱하게 굴러온 예능인들의 신선한 조합이라 탈출보단 예능에 기대가 컸다. 그런데 조합은 물론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캐릭터들이 대탈출에는 계속 등장한다. 시즌 1 때는 '이런 게 (방탈출) 마니아층이 있나 보다...?' 하며 의아해하던 강호동이 탈출과 추리에 미쳐(?) 탈출 폭격기가 되고, 격투기 선수로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던 김동현이 김호들(aka 부력강자)라는 허세 있는 엉성한 호들갑 캐릭터가 되는가 하면 슈퍼주니어의 예능 담당 신동이 브레인 담당 신대장이 되기도 한다. '바보', '간헐적 천재'라는 비슷한 캐릭터성을 오랫동안 보여주던 김종민도 김종밤(밤눈이 밝아서),김발견(발견을 잘 해서),김종문(문을 잘 닫아서) 등 대탈출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었을 법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다양한 에피소드만큼이나 멤버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탈출의 관전 포인트
<시즌을 거듭할수록 커지는 스케일>
<대탈출 유니버스의 등장>
<멤버들의 성장과 끈끈해지는 팀워크>
대탈출의 관전 포인트는 명확하다. 누가 그랬던가, "tvn에서 돈은 나영석 PD가 벌고 쓰는 건 정종연 PD가 쓴다."라고. (물론 대탈출도 그만큼 잘 번다고 한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은 제작비를 자랑하는 게 바로 대탈출이다. 그럴만한 것이 대탈출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은 아마 에피소드 하나만 봐도 느껴질 것이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이 스케일은 더더욱 커진다. 정말로 이런 기획을 하고 실행해서 방송해주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 특히 좀비 공장 편이나 살인 감옥 편 등, 공포 컨셉에서의 스케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시즌을 관통하며 연결된 에피소드들은 덕후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가령 시즌 1의 <악령 감옥>과 시즌 2의 <조마테오 정신병원>과 연결되고, 그럼에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시즌3의 <어둠의 별장>에서 풀리는 장면은 덕후의 덕심을 들끓게 하는 장치가 된다. 조금씩 깔려있던 복선들이 회수되며 완성되는 대탈출 유니버스는 몇 번을 돌려봐도 즐거울 수 있는 장치가 되고, 그렇게 덕후들은 갓종연을 외치게 되는 것이다! (외쳐, 갓종연!)
(대탈출 유니버스에 대한 자세한 이해는 나무위키 페이지를 참고하면 좋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컨셉의 예능에서 한 번 활약해 보겠다며 자신의 성과 드러내기에 급급했던 멤버들 간의 관계 변화도 재미의 한 포인트다. 다양한 탈출의 고비를 넘기며 멤버들은 서로 미루며 몸 사리던 모습에서 점점 찐한 동지애로 뭉쳐가며 팀워크를 이뤄가는 모습이 시즌을 거듭하며 그려진다. 세 번의 시즌을 함께 하며 각자의 역할과 임무를 인지하며 서로 믿고 협력하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대탈출을 보며(그것도 꽤나 다들 덩치 있는 출연진들의) 출연자들의 성장에 감동할 줄은. 초반까지만 해도 그저 대리만족의 느낌으로 대탈출을 봤다면 이제는 마치 같이 탈출을 하는 멤버가 된 마음으로 시청한다.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예능인 <범인은 바로 너>는 거대 자본력을 자랑하는 넷플릭스와 한국 국민 MC 유재석의 조합으로 공개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예능이다. 많은 이들이 그랬으리라. 유재석이 나오는 웬만한 예능은 전부 챙겨보는 나는 런닝맨에서 유임스 본드로 활약하던 유재석이나 의외의 스파이 연기 등을 인상 깊게 봐왔기 때문에 기존의 예능 속 모습과는 다른 추리 예능에서의 유재석 탐정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즌 1은 기대에 못 미쳤다. '범인은 바로 너'는 대탈출이나 크라임씬 같이 출연진의 활약으로 탄생하는 장면이나 변화하는 것이 많지 않다. 각 에피소드들은 결국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드라마처럼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 있고, 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출연자들은 자신이 부여받은 역할로 해당하는 행동이나 대사를 해야 한다. 그 지점이 앞서 소개한 두 예능과 다르다.
사실상 '추리 드라마' 성격이 강하지만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과정은 모두 예능적으로 진행된다. 힌트를 얻기 위해 간 장소에서 탐정들은(출연진들) 박나래나 개그맨들을 마주하고 그들이 시키는 미션을 수행해 힌트를 얻는다. 미션을 클리어해서 추리의 단서를 찾아가는 게 범인은 바로 너의 기본적인 방식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대본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순간 몰입도가 하락하는데 범인은 바로 너에서는 이 부분이 아쉬운 포인트였다. 초반부를 지나면 아, 대본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하지만 시즌2로 가면서는 예능적인 재미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확실하게 잡고, 전체적인 스토리라인도 긴장감 있게 구성해 몰입도를 높이려고 시도한 느낌이 들었다.
범인은 바로 너의 관전 포인트
<빵빵한 자본력으로 인한 화려한 출연진 라인업>
<드라마적인 스토리텔링>
범인은 바로 너의 관전 포인트는 그야말로 빵빵한 자본력으로 인한 다양한 장면들과 화려한 출연진 라인업을 꼽을 수 있겠다. 대탈출과 크라임씬이 밀실의 정해진 공간에서 진행되는 반면, 범인은 바로 너는 출연진들이 힌트를 얻기 위해 차를 타고 다양한 장소로 이동한다. 덕분에 다양한 화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션을 위한 세트 역시 자본력이 팍팍 쓰인 느낌이 난다. 거기다 이미 고정 출연진은 유재석을 비롯해 이승기, EXO의 세훈, 구구단의 세정, 박민영, 이광수 등 한류 스타들로 구성되어 있고, 게스트 혹은 내용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도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 부분은 참고 링크의 글에서 그 이유를 더 잘 알 수 있었는데, 넷플릭스가 OTT 서비스 시장에서 기회의 땅이라 볼 수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각했다는 것.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순위에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한류에서 각광받는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둔 좋은 콘텐츠가 있어 링크를 두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 참고 링크:
또한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스토리라인 역시 범인은 바로 너의 차별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시즌2는 '꽃의 살인마'라는 연쇄 살인마를 찾기 위한 탐정단의 고군분투가 계속된다. 각 에피소드는 꽃의 살인마로 추정되는 범인이 벌인 연쇄 살인에 대한 추리로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나름의 반전(?)도 있다. 사실 큰 뼈대를 이루는 꽃의 살인마보다는 자잘한 각각의 에피소드의 짜임새가 좋았다. 런닝맨 류의 예능에 추리가 가미된 것을 좋아한다면, 아마 잘 맞을 것이다. 나 역시 아쉬운 점을 짚어가며 이야기했지만, 막상 볼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봤다.
추리 예능을 워낙에 사랑하는 탓에 글이 점점 길어 나는 걸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늘어나버렸지만,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을 보고 추리 예능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많은 추리 예능이 탄생하길 기다리며, 오늘의 글은 이걸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