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주 핫한 유행어 몇 개가 있다.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좋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땐 스튜핏! 칭찬할 때는 그레잇, 혹은 알랏킷! 하고. 다분히 짤막하고 심플한 영어단어들이 인터넷에 난무한다. 심지어는 광고 메일에서는 다들 이거 안 사면 스튜핏! 이라며 다그치고, 생민한 삶을 살자며 절약을 내세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한 이들도 있겠지만 아마 인터넷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이 유행어들이 바로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김생민의 영수증은 사실 김숙, 송은이의 비밀보장에서 처음 시작된 코너다. 김생민이 비밀보장 청취자들의 경제자문 위원 역할로 어드바이스를 해주다가 인기가 높아지면서 따로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영수증을 알게 된 건 일을 하면서 늘 똑같은 노래를 듣는 것이 지겨워질 때 쯤이었다. 우연하게 인터넷에 올라온 김생민의 영수증 추천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가 방송이 3회차 쯤 진행된 시점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팟캐스트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팟캐스트에 대한 궁금함 반으로 겸사겸사 시작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단순히 한 개인의 영수증을 보고 재무 설계를 도와주고 조언만 해준다고 생각하면 한~참을 잘못 생각한 것이다. 김숙과 송은이, 김생민 세 명의 합이다.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세 명의 관계가 오래된 만큼 셋의 토크는 죽이 척척 맞는다. 토크가 늘어지거나 중간에 마가 뜨는 일이 없다. 노련한 세 개그맨의 조합은 1시간을 10분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김생민의 신랄한 '스튜핏' 소리와 김숙의 빵터지는 웃음소리, 그리고 적절하게 정리해주는 송은이의 말을 듣다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팟캐스트 1위, 그리고 지금의 어마어마한 돌풍을 만들어 낸 것은 단연 이 세 사람의 합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송은이와 김숙은 mc인 동시에 청자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김생민이 '넘을 수 없는 차원의' 절약 마인드로 일침을 날리면, 송은이와 김숙은 (특히나 김숙은) 우리와 영수증의 주인을 대신해 충동적인 소비를 옹호하고 대변해준다. 이 점 때문에 우리는 따끔한 통장요정 김생민의 말에도 주눅들어 있다가도 '맞아 맞아, 나만 그런게 아니야!' 하면서 핏대를 세워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다.
김생민의 영수증, 이 성공이 의미있는 이유
'김생민의 영수증'의 대박 행진은 개그맨이자 20년차 리포터인 김생민의 대박을 뜻하기도 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공중파에서 본인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으로 편성을 받았다. 그가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를 데뷔 25년만에 '제 1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소개했고, 김생민이 20여년간 리포터로 활약해 온 연예가중계에서는 그를 처음으로 '리포터'가 아닌 '인터뷰이(Interviewee)'로 초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20년만에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그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김생민의 영수증의 성공과 김생민의 이같은 대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기존의 예능이나 드라마의 대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TV화 된 첫 사례라는 점이다. 팟캐스트에서 먼저 시작한 방송이 입소문을 타면서 공중파로 진출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다. 이는 미디어 컨텐츠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상당히 독특해, 앞으로 비슷한 사례들이 나오지 않을까란 기대를 갖게 함과 동시에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최근의 트렌드였던 YOLO(You Only Live Once;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열풍에 조금의 경각심을 가져다주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다. 점차 심각해져가는 빈부격차의 반작용으로 한번 사는 인생, 현재를 즐기자! 하는 태도의 YOLO족이 최근 급증했다. 많은 매체들과 미디어에서도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YOLO족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어떻게 하면 '욜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바빴다. 물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좋은 삶의 태도는 아니다. 현재를 즐기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찌됐건 '계획적인' 소비가 중요하다는 것이 영수증에서 말하는 핵심이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YOLO의 삶은 앞뒤를 잘라먹고, 그저 현재를 즐기는 모습만을 비춰준다. 영수증 열풍으로 인해 조금은 잘못된 방향으로 편증될 수 있는 이같은 상황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영수증의 성공이 의미있는 이유의 또 한가지 이유는 소비와 저축, 그 이전에 중시해야 할 것을 정확히 짚어준다는 점이다. 통장요정 김생민은 '충동적금', '스트레칭은 노머니' 등의 말을 하면서 저축과 절약을 이야기하지만, 돈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족사랑', '노동', '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언급하며, 이러한 곳에 들어가는 소비는 아끼지 않고 마음껏 써도 된다! 라고 언급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큰 감동을 얻었다. 직장인 초년생으로써 소비와 저축 사이의 밸런스, 그리고 가족과 문화생활,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걸 몇 차례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서 김생민은 명쾌한 해답을 준다. '습관 이즈 베리 임폴턴트', '효도 이즈 그뤠잇', '자기 개발은 중요하지만 외면 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개발 역시 중요하다' 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절약보다 더 큰 의미를 전달해준다.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에 반해 팬카페에 가입하는 이들이 실시간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덧붙여 말하자면, 나 역시 가입했다.)
마지막으로 김생민의 영수증이 의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방식으로 한결같이 꾸준히 마이웨이를 걸어온 그의 삶의 태도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김생민의 삶의 태도는 우리네 소시민들보다도 더욱 소시민같고 검소하다. 소소하고 성실하게 화려한 연예계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고수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걸어왔다. 우리는 그의 이러한 성공을 보며 희망, 어쩌면 위로를 받았다. 꼭 모두가 화려하지 않아도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 이러한 삶도 저러한 삶의 모습도 분명 제각기의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영수증의 성공이 값진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긍정 마인드를 내세우며, 생민한 삶!을 전파하는 그의 모습을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