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의 주체가 되어 사는 이직 준비생 혹은 백수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다 무의식적으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왔다. 까지 쓰고 나니 불현듯 마지막 글이 얼마나 오래됐던가 싶었다. '내 브런치'에 들어가 마지막 글이 올라간 날짜를 확인했더니 놀랍게도 무려 2018년도 10월에 멈춰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브런치를 방치하다니, 이렇게 내가 브런치에 무심했던가 새삼 놀랐다.
처음 브런치에 발을 들인 건 사회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참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사회 속에서의 나와 온전한 나 자신을 어떻게 분리해야 할지 가늠되지 않았고, 삶과 일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에도 익숙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기.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에 대해 대처하는 것,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 새롭게 겪는 하나하나는 마치 과제처럼 느껴졌고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의 답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썼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힘들었던 시기마다 브런치를 찾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무형의 감정들을 조금씩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많이 단단해져 그때에 비해 작년 한 해는 글로 털어내는 대신 마음속에서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정립해 나갔던 것 같다.
나의 직업관, 하고 싶은 것들,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 목표 같은 것들과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 같은 것. 이를테면 내가 꾸려가고 싶은 나의 삶의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둘 수 있을 만큼의 용기는 갖춘 사람으로 살자는 생각.
그래서 2020년을 맞이하기 전 고민 끝에 퇴사를 했다. 적잖은 이들이 나의 퇴사에 놀랐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지인 한 명은 그랬다. 회사에서 인정받으시면서 잘 다니시는 거 아니었어요? 하고. 그들이 보기에 나는 팀장의 직위와 좋은 팀원들, 괜찮은 연봉, 나름대로는 괜찮은 워라밸을 갖춘 것처럼 보였을 테니. 물론 아니라고도, 아쉽지 않다고도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수백 번을 생각해도 이곳에서 평생을 직장인으로 보낼 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던 게 첫 번째였고, 한층 단단하게 채워진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 해보고 후회하자는 생각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세 번째.
간혹 그런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강하게 받을 때가.
딱 10년 전 대학 입시에서 물 먹고 반수를 고민하던 순간과 작년이 나에겐 그랬다.
내 삶의 변곡점을 그릴 수 있는 순간이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나는 퇴사를 했고 반쪽짜리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다. 다만 프리랜서라고 하기엔 결과물로 얻은 수익이 아무것도 없기도 해 반쪽짜리라고 이름 붙였지만 쓰면서도 민망함은 있다. 정정을 해 보자면 프리랜서를 지망하는 이직 준비생 혹은 백수가 현재의 내 상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과
나의 퇴사를 지켜본 이들의 궁금증은
한 가지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건데?
대부분 저렇게 물어오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정확히 이랬다. "글쎄요, 이것 저것 써보려고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만큼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써보려 한다.
퇴사를 하고 난 두 달 동안 정확히 두 편의 단막극과 한 편의 미니시리즈 기획안과 2회분의 대본을 써냈다.
그게 반쪽짜리 프리랜서 지망생이 현재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결과물이다. 이제는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들을 써보려 한다.
그동안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은 오래전부터 품어왔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했냐고 묻는다면 부끄럽게도 당당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가 됐든 떠오르는 대로 써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작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허울 좋게 프리랜서라는 이름 뒤에 숨으려는 생각은 당연히 없다. 반쪽짜리 프리랜서, 작가 지망생이라고 이름 붙여도 결국 나는 현재 수입이 없는 백수에 불과함을 너무나도 인지하고 있다. 그저 프리랜서로 자립할 수 있게 기반을 다져가며 천천히 또 다른 방향을 준비하려 한다.
지금은 어쩌면 프리랜서 체험판을 플레이하는 기분이다. 낯부끄럽게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혼자 들뜨고 마치 그들처럼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생활하고 있는 요즘이다. 내 욕망의 주체가 되어 사는 삶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 이여름의 인스타그램 (@this_summe_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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