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스로 위로의 포만감을 마비시키고 있지 않은가?

자기위로는 언제 자기기만이 되는가

by 이수염

인간은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며 살아간다.

타인의 말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하루 중 가장 오래 우리 곁에 머무는 말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는 언제까지 건강한 위로일까. 그리고 그 위로는 언제부터 자기기만이 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심리적 구분 이상의 문제를 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기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정직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하기 쉽다. 자신을 위로하려는 언어는 때로 현실을 부드럽게 만들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언어는 때로 인간을 가혹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에서는 항상 두 가지 목소리가 함께 존재한다.


하나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상처를 입은 순간에 인간을 붙잡는다. 실패했을 때 “괜찮다”고 말하고, 거절을 당했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목소리는 인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인간이 계속해서 시도하고, 다시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은 종종 이런 언어에서 나온다.


그러나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실수를 인정하게 만들고, 잘못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종종 이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만약 인간에게 이 목소리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목소리 사이의 경계가 언제나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와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자기위로는 때로 자기기만으로 변하기도 한다.


자기기만은 현실을 피하기 위한 언어다. 인간은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 앞에서 종종 다른 설명을 만들어낸다. 실패의 원인을 환경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의 책임을 상황 속으로 흩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잠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종종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평온함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반복적으로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혹은 “이번에도 운이 없었다.” 이런 말들은 잠시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말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잃게 된다. 이때의 위로는 더 이상 자신을 지켜내는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멈추게 하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자기위로와 자기기만을 구분하는 기준은 어쩌면 단순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 자신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가라는 기준이다. 건강한 자기위로는 인간을 다시 현실로 돌려보낸다. 그것은 잠시 숨을 고르게 하고, 다시 시도할 힘을 남겨둔다. 그러나 자기기만은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그것은 당장의 불편함을 줄여주지만,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도 함께 줄여버린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언제나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우리는 감정과 경험 속에서 판단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자기위로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에게 편안한 설명을 선택한다. 그 설명이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 순간 위로는 점점 자기기만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경계를 구분할 수 있을까. 어쩌면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나에게 하고 있는 이 말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멈추게 하는가.

만약 그 말이 다시 시도할 용기를 남겨둔다면 그것은 자기위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말이 자신의 책임을 흐리고 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만든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일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이 이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위로와 자기기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어떤 순간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조금 부드럽게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현실을 더 엄격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인간의 내면은 그렇게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 속에 있다.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기준을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조금은 자신을 보호하고, 조금은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자신을 완전히 속이기 위한 언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일 것이다.


자기위로는 인간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언어다. 그러나 그 언어가 현실을 가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라 정지의 언어가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객관성도, 완벽한 낙관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진실이다.

어쩌면 자기위로와 자기기만의 경계는 바로 그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이 우리를 잠시 쉬게 하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가, 아니면 우리를 편안한 자리 속에 머무르게 만드는가.


인간은 스스로에게 많은 말을 건네며 살아간다.

그 말들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고, 때로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멈춰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나에게 하고 있는 이 말은 나를 지켜주는 말인가 아니면 나를 멈추게 하는 말인가.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한, 자기위로는 아마 아직 자기기만으로 완전히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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