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부에 대한 회상(上)

그와의 대국 그리고 토끼그림

by 이수염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중학교 졸업 무렵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내 기억 속의 나의 할아버지는 멋쟁이였다.

항상 아침마다 정갈하게 머리를 빗었으며, 전기면도기소리가 아침마다 내 방까지 들려왔다. 집에서는 상하의가 셋업으로 되어있는 트레이닝 복을 입고 거실에 앉아있었다. 외출하는 날이면, 유럽 산업혁명시기에 성공한 사업가들이 입고 다닐 법한 정장을 입고, 반짝이는 붉은빛이 도는 몽크스타일 구두를 신거나 윙팁 같은 느낌의 구두를 신었다. 투브릿지로 되어있는 금테안경을 썼다. 말 그대로 말끔한 멋쟁이였다.


아직 할아버지와 따로 살던 중학교 무렵, 경제적으로 가세가 기울어 힘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 그 아파트에 살게 된 지, 8년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15,16살이었다.

부모님은 퇴근하시면, 방문을 닫고, 종종 다투셨고, 아직 어린 동생은 이유 모를 두려움 때문인지 울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동생의 달래고, 밖으로 나가서 집 근처 공원 트랙을 한참 돌곤 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내 인생에서 처음 느꼈던 고독이지 않았나 싶다. 짐작건대, 우리 네 식구 모두 그런 시기였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후로, 셋방살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의 집은 주택이었는데, 조부모와 우리 형제가 그 주택에서 생활했고, 부모님은 주택 밖, 계단밑에 일자로 구조로 길게 되어있어 각 공간을 중간문들을 열고 드나들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에서 생활했다. 주택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옥상이 있었다. 그 옥상에는 한편에 컨테이너로 만든 것 같은 옥탑방 같은 주거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세입자가 살았었다.


원래부터 욕심이 많지 않던 내가 남의 것을 완벽하게 탐내지 않게 된 시점은 아마 이때 할이버지 집에서 셋방살이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분명 나는 이곳에 살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집주인인 할아버지는 가족이 맞지만,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이 집에는 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동생과 살 부비며 잘 수 있는 방안에 침대가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중고차매장의 사장이었다. 촌구석에서 대도시로 나와 중고차매장의 사장이 된 것을 그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물론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여하튼 자수성가를 이룬 것이며, 자신의 부인과 3남 1녀의 가족의 생계를 지켜냈으니까. 따뜻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 역시 그를 그저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으니.


초등학교 시절엔 할아버지의 회사를 종종 놀러 갔었다. 그 시절에 그와 내가 잠시 같이 살던 시기였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기억이 있으니, 그랬던 것 같다.


사무실은 작았지만, 앞에 놓여있는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을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개인의 성공이 나의 경제적 풍요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제법 멋진 삶을 살았던 것에 동의하지만, 그의 손자로써의 나는 가족구성원인 그가 인간적으로 멋지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그를 향한 나의 미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좋은 추억이라 할 만한 것들이 몇 개 떠오르지 않는다. 바둑이나, 그가 그렸던 토끼 그림 한점 정도가 전부이다.


토끼그림 일화는 커다란 내용은 없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제법 잘 그리던 내가 어렸을 적, 집 안 곳곳에 퍼져있는 가족들을 찾아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가 그린 토끼그림을 보고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토끼털을 한 올 한 올 표현했고, 말려있는 긴 뒷다리와, 짧은 앞다리, 그리고 검은 눈망울을 멋지게 표현했었다.

참고로 나의 아버지는 경찰차를 그려주었는데, 그림솜씨가 형편없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 ( 그래도 그 경찰차 그림은 아빠와의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할아버지와 잠시 같이 지낸 적이 있다. 아마 8살이나 9살이었을 것이다. 그때 근처 바둑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학원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심지어는 나를 괴롭히는 또래아이 한 명도 있었다. 그의 의도는 그게 아닐지 모르지만.


바둑학원을 다니게 된 후로는 집에 와서 한동안 할아버지와 거실에 앉아서 바둑을 두었다. 서로 제법 진지하게 두었기에,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어느 바둑대회 결승전 같은 적막과 침묵이 감돌았다. 동시에 나무로 된 바둑핀 위에 그와 나의 손이 바삐 움직이며 검은 돌과 흰돌로 채워 나갔다.

대부분 그와의 대국에서 내가 패배를 많이 했다. 그렇다고 그가 잘 둔다고는 못 느꼈던 것 같다. 이런 기억이 있다. 한 번은 그와 바둑을 두다가 처음으로 내가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다. 이제 어떤 한수로 나의 승리가 확정되는 상황에서 나는 그 한 수를 정확히 찾아내어, 그의 진영을 흔들었다. 대국의 적막이 깨진 것은 그때였다.

“ 이전 수를 잘못 놨어. 한수만 물러.”

난 싫었지만, 그렇게 했다.

후에 바둑판 위 상황은 역전되어, 내가 불리했었는데,

입장만 바뀐 같은 상황에서, 한 수 물러줄 것을 그에게 요청하였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승리했다.

그때의 억울함은 그때까지는 못 느껴본 구조적 부조리에 대한 억울함이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회상하니 웃긴 것은 그는 나와의 대국에서 승리한 것을 몹시 기빠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일면을 보여준 일화다.


물론 나는 그 이후로는 그와 바둑을 두지 않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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