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노인의 말(馬), 조부에게 하는 말(言)
나의 할아버지는
내 삶의 큰 영향을 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에 대한 내 감정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지는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가 내게 끼친 영향이나 그로 인해 사유하며, 무언가를 바라보는 다각도의 관점을 준 것은 사실 감사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분명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었지만, 유대감으로 따져보면 별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미움이 더 크게 남아있으니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의 부모님의 몫까지 내가 미워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아버지는 62년생이라 나와 30살 차이가 나는데,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이 정도의 차이가 났다.
옛날 사람이라면 옛날 사람이고, 그 시절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가장의 위엄이라던지, 그 시절 아버지와 아들의 어색한 관계라던지 말이다. 그래서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자신의 관계가 ' 그때는 다 그랬지 뭐. ' 라며 넘기는 것 같지만, 같은 아들의 입장에서 다정함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버지가 조금 안쓰럽다. 흔히 말하는 꼰대라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 있다.
' 내가 한창일 때는 그랬어. '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누구나 전성기가 있고 찬란했던 시절을 회상하거나, 과거의 어느 시절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저 문장은 그러한 아름다운 회상의 의미가 아니다.
일반화라고 생각할 수는 있으나, 나의 경험상으로는 대개 그랬다. 저 문장이 무엇보다 싫은 이유는 나이가 다를 뿐 동시대를 살아가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시대를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 태도 같기 때문이다. 저 말을 하는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은 아니지 않나. 분명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문장을 뱉으면서 현재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며, 자신을 과거에 던져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이와 모든 것이 삶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저 말을 하는 나의 할아버지에게도 배울 점은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거나 깨닫게 될 때에는 대개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그 대상의 장점을 보고 '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서 ' 깨닫게 되는 경우와 또 다른 하나는 '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처럼 대상의 단점이 깨달음을 주는 경우이다. 나의 할아버지 역시 장단점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그에게서 깨우친 점은 그의 단점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선 그의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것이다. 가끔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나왔을 때,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정확한 그의 나이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 80이 조금 안되었던 나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 굽혀 펴기를 20개는 거뜬히 했으니. 피지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건강관리에도 그는 관심이 많았다. 듣기로는 40살 무렵부터 모든 식단을 저염으로 했으니, 얼마나 그가 건강과 자기 관리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루는 몰래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의 방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전칠기 자수가 있는 장롱이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방에는 할아버지 특유의 비누냄새와 오래된 장롱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났다. 얼핏 맡으면 섞은 두 가지 냄새가 위스키향 같기도 했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천천히 할아버지의 방을 둘러보았다.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장롱이 방의 절반을 차지한 것을 아니라, 장롱의 배치를 벽에서 한참 떨어뜨려서 한 것이었다. 당연히 벽과 장롱사이의 공간은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큼의 복도넓이였다. 하지만 그 공간이 통로가 될 수 없던 까닭은 그 공간에 온갖 건강관 식품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제의 모습이 생각났다. 젊은 나이에 중화를 하나로 통일하는 위업을 이루었지만, 불가피한 죽음을 두려워하여,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불로초를 애타게 찾아다니던 진시황제,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모든 것이 순장된 진시황릉처럼 할아버지의 방은 그의 건강과 탐욕에 대한 집념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진시황릉처럼 느껴졌다.
그가 가진 장점들은 하나같이 정도가 지나치다. 그래서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단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이용해 가족들에게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었다면, 그래서 사랑을 받고, 그가 주변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느꼈다면, 그도 덜 탐욕스럽고 조금은 다정한 인간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는 다정한 아버지를 가진 아들이 되고, 나 역시 할아버지를 적어도 미워하지 않는 손자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17살이었던 내가 미움을 가족에게 품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열등감이 있었다. 목소리가 항상 컸고, 근엄한 듯 행동했지만, 가끔 그가 거실에 앉아하는 넋두리를 방 안에서 들어보면, 그는 학벌에 관한 열등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결핍이 그의 인생에는 바람직하게 작용한 것 같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그의 결핍은 그를 배움을 탐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컴퓨터도 배우고, 시간이 나면 우리 형제의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하다가 막히는 것들을 나에게 물어보곤 했다. 노인대학이라던지, 복지회관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제법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학사모를 쓰고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매우 자랑스럽게 거실 한편에 걸어놨고, 자격증 등도 트로피 전시하듯 거실 한편에 전시했다. 배우려는 의욕은 분명 그의 장점이다. 이런 점은 나도 평생 본받고 싶다.
이렇듯 그의 장점이 확실한 만큼 그에게 느끼는 나의 미움 역시 분명하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다. 물론 이런 나의 미움이 그가 살아온 시대나 환경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결핍을 채우고자 살아오면서 자신의 주변을 돌볼만한 시야가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이해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어렸을 때 그의 존재는 나에게 참 이질적인 존재였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양면성을 제일 많이 느끼게 해 준 인물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지만 따뜻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제법 멋진 삶이었지만,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는 그렇지 못했다. 절약과 같은 좋은 가치관도 정도를 넘어 타인에게 강요하면, 좋지 못할 수 있다는 점등, 많은 장단점 혼란스럽게 혼재된 인간이었다. 보통 어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보면 ' 그 사람의 장점은 이것이야, 단점은 저것이고. ' 하며 명확히 구분되어 보이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다. 이러한 그가 가진 성질은 나의 시야에 관점에 몹시도 영향을 끼쳤다.
나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현상들이 명확하게 좋지도 그렇다고 아주 싫지도 않은 그런 인간이 되었다.
기쁠 일이 있을 때는 기쁨의 이면에 있는 안 좋은 점을 생각하게 되었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좋은 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교훈을 나의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피부로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나의 관점이 그의 유산이라면 유산이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마냥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스스로 답답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그의 유산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무척 되었다. 쉽게 들뜨지 않았고, 쉽게 낙담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고맙기도 밉기도 한 나의 할아버지, 나는 아직도 그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혹은 임종을 예견했을 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뿌듯했을까? 억울했을까? 아니면 고독했을까? 나를 생각하기는 했을까?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당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 놓아보려 합니다.
어딘가에 도착했다면, 거기서는 너무 추위를 참지 말고, 배움을 멈추지도 말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부디 그곳에서는 그곳에 있는 다른 이들과 사랑하며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