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휘둘리고, 나아가는 삶
모든 생명체들이 불안에 떤다. 인간 역시 그렇다.
불안을 느끼는 모든 생물은 안정을 추구한다.
삶을 살아내다 보면 ‘ 나만 불안한 것 같은 순간 ’ 이 종종 있다. 남들은 다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나만 불안한 것 ’ 같은 ’ 순간이다.
‘ 같은 ’이라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나에게 느껴지는 감정이고, 추측일 뿐이다. 물론 불안은 물론이거니와 안정 역시 상대적인 것으로 사람 10명을 놓고 안정감이나 불안감에 순위를 매겨 줄을 세워보면, 분명히 순위는 매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안정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불안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타인과 비교하거나, 타인에게 비교당하기 때문에 더욱이 상대적 불안이나 상대적 안정감에 노출될 수 밖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안을 줄이고, 안정을 찾는가?
해답은 역시 ‘ 나다움 ‘ 을 찾는 데 있다.
‘ 나다움 ‘이라는 것은 즉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 불안은 무엇이 근원인지 기준을 명확히 한다면, 불안을 덜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불안이라는 것과 안정이라는 것은 책과 같다. 현재 나의 불안의 근원을 찾아 해소하여도, 또 불안이 엄습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음 페이지의 불안이다.
가령 나의 불안이 경제적인 것에서 오는 불안이라면, 경제적인 안정을 찾아 해소하면, 불안이 해결될 것이다. 그 후에 생긴 불안은 다른 페이지에 또 다른 불안이다.
결국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다음 페이지로 넘기며 안정을 찾고, 해당 페이지에서 새로운 불안을 느낀다면, 우리는 또 한 번 해소하기 위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 즉,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나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내 불안이 어떤 페이지에 놓여있는 불안인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크게 느끼는 불안이나, 안정이 다르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마음에 해당하는 페이지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무차별적이고, 불명확한 기준들에 의해 우리는 잘못된 안정을 찾곤 한다.
만약 마음이 불안한 상태인데, 경제적 안정감을 느끼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잘못된 비교를 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경제적 불안을 느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사람들과 비교하며, 회피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저마다 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과 안정에도 저마다 맞는 짝이 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살아가면서 불안을 완전히 종식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위치와 불안의 근원을 정확히 알고, 스스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면, 내가 처한 불안을 해소해 가며, 안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시기와 상황에 맞는 행동이라는 것이 있다.
‘ 현재의 충실하라 ’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현재 내가 처한 불안을 타파하는 명확한 안정감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비를 막으려 우산을 쓰고, 여름엔 더위를 느끼기에 얇은 옷을 입는다. 이런 것이 우리 생활에 가깝게 있는 ‘ 현재에 충실하라 ’의 표본이다.
나 역시 때때로 기준을 잃어 엉뚱한 페이지에서 답을 찾을 때가 있다. 뭐 어떠한가?
다시 돌아와 답을 찾으면 되는 것을.
인생의 시간표에 맞춰 성실히 휘둘리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을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