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기에 느끼는 작은 행운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감은 채로 이불 속에서 팔을 휘적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실눈을 뜨고 폰 화면을 보았다.
오전 7시, 최근 수면시간 중 가장 길게 잤다. 요즘엔 나는 의식이 돌아오면 기지개를 켜고는 곧바로 일어난다. 침대에서 자리를 잡고 뭉개는 시간이 좀 줄었다. 그랬더니 하루가 늘어났다.
후드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대충 입고, 사방으로 뻗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마른세수를 하면서, 책 한 권을 들고 집 밖을 나섰다.
이미 아침 햇빛들이 세상을 환하게 칠해놓아서,
지난밤에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내 폐에 차오르는 찬 공기뿐이었다. 한숨 들이킬 때마다 찬 공기가 내 몸 안을 돌고, 다시 빠져나갈 때 눈과 정신이 맑아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와 눈이 더욱 또렷해지니,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맑은 하늘, 건물 사이로 하얗고 노랗게 들어오는 빛,
곧 봄이 온다는 듯이 준비 중인 목련꽃 봉오리.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역동적으로 공을 차고 있는 조기축구회 사람들. 때로는 세상이 깨어나는 것보다 한발 늦게 깨어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조금 늦었기 때문에 이미 깨어있는 더 많은 것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이 시간의 내가 싱그러움이 넘치는 봄이 된 것만 같다.. 괜스레 나에게 생명력이 넘쳐난다.
아직 겨울이기에 꽃봉오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카페에 도착했다. 찬 공기로 제법 빨개진 볼이 따뜻한 공기를 만나니, 말랑해졌다.
따뜻한 얼 그레이 티를 주문했다.
사실 냄새를 잘 못 맡는 나에게 차 종류는 따뜻한 물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따금씩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후각세포가 갑자기 찾아온 봄에 만개하는 꽃들처럼 깨어날 때가 있는데, 그때 코를 타고 들어오는 세상의 향들이 나에게는 이벤트가 된다.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불편감은 없지만, 좋은 향들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꽤나 아쉬운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샴푸나, 바디워시 냄새, 은은한 풀 내음, 바다 냄새 등.
삶을 살아가며 체감할 수 있는 한 장르가 막힌 셈이다. 그나마 좋은 점을 꼽자면, 갑자기 후각이 살아나서 차 향기가 콧구멍 입구부터 후각세포를 꾹꾹 누르며, 뇌까지 걸어 들어올 때면, 차 한 잔의 향기조차 내 인생의 큰 이벤트가 된다.
이런 이벤트가 언제일지 알 수는 없지만, 남들보다 차 한 잔의 향기를 더 인상적이고 입체적으로 맡을 수 있는 나는 운이 좋은 사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