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벌, 소음의 축복
14시 17분
카페는 늘 시끄러웠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김을 토하고, 유리컵들이 서로 부딪히며 얇은 비명을 냈고, 사람들은 각자의 언어로 자기 하루를 떠들었다. 나는 그 소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저 도시의 기본 배경음처럼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그 남자는 그 소음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 같은 시간.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중앙 테이블.
그는 늘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그게 유난히 눈에 띄었다.
요즘 사람들은 거의 이어폰을 낀 채로 카페에 앉는다. 음악, 팟캐스트, 유튜브, 통화. 자기만의 층위를 하나 더 덧대기 위해서. 그는 아무것도 덧대지 않았다. 대신 소음을 정면으로 맞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더 마주치자 그건 취향이 아니라 선택처럼 보였다. 그는 소음 속에서만 편안해 보였다. 전화 통화 소리가 옆 테이블에서 커져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의자를 끌어도, 블렌더가 미친 듯이 울려도 그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더 편안해 보였다.
나는 어느 날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호기심이었다.
“이어폰 안 끼세요?”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껴요.”
“음악 안 들으세요?”
“들어요. 집에서.”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집에서는 듣고, 여기서는 안 듣는다는 것. 보통은 그 반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여기서는 왜 안 들으세요?”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해지면… 생각이 너무 커져서요.”
그 문장은 대답이라기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한 척도 하지 않았다.
“생각이 커진다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처럼 시끄러우면 생각이 잘 안 들려요.
머릿속 소리보다 밖 소리가 더 크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그것이 다행인 것처럼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를 조금 더 관찰하게 되었다.
그는 항상 시끄러운 시간대에만 왔다. 한가한 오후나 이른 오전에는 오지 않았다. 피크 타임,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 대화가 겹쳐지고 웃음소리가 터지는 시간. 그는 노트북을 켜지도 않았고,책을 읽지도 않았다.그저 커피를 마시며 소음을 듣고 있었다. 마치 소음을 소비하는 사람처럼.
어느 날은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시끄럽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 한 마디가 조금 소름이 돋았다.
“왜 좋죠?”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머리가 덜 비거든요.”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머리가 덜 빈다. 보통 사람들은 머리가 비기를 원한다.
생각을 비우고 싶어 한다. 그는 반대였다.
“생각이 많으세요?”
“많죠.”
“좋은 생각?”
그는 잠깐 웃었다.
“아니요.”
그는 웃으면서도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시끄러운 데만 와요.”
“도망치는 거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별로 부정하지 않았다.
“도망이죠.
근데 다들 똑같이 도망치잖아요.”
그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저 사람은 이어폰으로 도망치고,
저 사람은 노트북으로 도망치고,
저 사람은 대화로 도망치고.
나는 그냥 소음으로 도망치는 거고.”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모두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들은 고요를 찾는다. 명상, 힐링, 디지털 디톡스, 자연 속 휴식. 모두 조용함을 미덕처럼 소비한다.
그는 정반대였다.
어느 금요일, 카페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머신 소리도 줄었고,대화도 없었다. 그는 그날도 왔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불편해 보였다.
의자를 흔들고, 손톱을 테이블에 두드리고, 휴대폰을 반복해서 뒤집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조용하네요.”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요.”
“왜요?”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릿속이 너무 잘 들려서.”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의 불안을 목격했다.
그는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말했다.
“사람들이 왜 명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왜요?”
“저는 조용하면 죽을 것 같거든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웃음은 거의 방어에 가까웠다.
“조용해지면 생각이 다 튀어나와요.
어릴 때 기억, 실패한 것들,
말 못 한 말들,
끝나지 않은 대화들.”
그는 말을 멈추고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래서 저는 시끄러운 게 좋아요.
생각이 못 나오게 막아주니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사람들이 찾는 치유가 누군가에게는 처벌일 수 있다는 사실. 그는 조용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였고, 평범한 손님처럼 보였고, 그저 이어폰을 안 끼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매일 자기 머리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화를 냈다. 그 날은 카페가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머신 소리도, 음악도,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잠깐의 완전한 고요. 사람들은 놀라서 웃었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이렇게 조용해.”
그의 목소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더 크게 울렸다.
직원이 사과하며 곧 복구될 거라고 말했지만,그는 앉지 않았다.
“조용하면 안 되잖아요.”
그 말은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투정처럼 들렸겠지만, 그의 말은 나에게 거의 생존 선언처럼 들렸다.
전기가 복구되고 카페는 다시 시끄러워졌다.
머신이 울리고, 사람들이 떠들고, 컵이 부딪혔다.
그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그 말이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마치 방금까지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나는 그날 이후 몇번의 금요일을 걸쳐,
그를 더 자주 보게 되었다. 그는 항상 소음을 고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점 그가 소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소음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나는 그의 귀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는 항상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그런데도 귓속이 늘 조금 붉어 보였다.
“귀 괜찮으세요?”
그가 나를 보았다.
“왜요?”
“자주 긁으시길래.”
그는 웃었다.
“그냥 예민해서요.”
그는 그 말을 하면서도 귓불을 무의식적으로 만졌다.
그날 카페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그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 그분요?
항상 제일 시끄러운 시간에만 오는 분.”
“네. 자주 오시죠.”
직원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좀 특이한 분이에요.”
“어떻게요?”
“주문할 때 항상 직원이 말하는 걸 잘 못 알아들어요.
근데 또 이어폰도 안 끼고, 통화도 안 하고.”
그 말이 머릿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그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이 카페, 시끄럽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청요.”
그는 안도하듯 웃었다.
“다행이네요.”
그 웃음은 어디까지나 확인에 가까웠다.
“왜요?”
그는 잠시 침을 삼켰다.
“가끔은… 잘 모르겠거든요.”
“뭐가요?”
“진짜 시끄러운 건지.”
나는 그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농담을 할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제가 원래 귀가 좀 안 좋아요.”
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완전히 안 들리는 건 아닌데,
어떤 날은 거의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나는 그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여기 와요.”
“왜 하필 여기죠?”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잖아요.
그러면 들리든 안 들리든 상관없이
시끄러울 것 같아서.”
그 말은 논리라기보다 믿음에 가까웠다.
그는 소음을 확인하려고 왔다.
그 후 또 다른 금요일. 그는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말을 했다.
“혹시…여기 음악 나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잔잔하게 나와요.”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그날 카페는 분명 시끄러웠다. 머신도, 대화도, 음악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이상하네.”
그는 중얼거렸다.
“원래는 시끄러워야 하는데.”
나는 그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그가 소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음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정적인 날이 왔다. 카페에서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 귀가 찢어질 듯한 사이렌. 사람들이 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안 들려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요?”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소름이 끼쳤다.
그는 사이렌을 듣지 못했다. 사람들의 비명도, 경보기도. 그는 그저 입 모양을 보고 시끄러울 거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나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이어폰을 끼지 않는 게 아니라…”
그는 귓속을 살짝 보여주었다.
귓속에는 작은 장치가 박혀 있었다.
“백색소음 생성기예요.”
그는 말했다.
“완전히 안 들릴 때가 있어서
그럴 때는 이걸로 가짜 소음을 틀어요.”
나는 그 장치를 보며 말을 잃었다.
“조용하면 무서워서요.”
그는 웃었다.
“진짜 무서운 건 아무 소리도 없는 세상이거든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분노를 터뜨렸다.
“사람들은 고요가 힐링이라고 하죠.
자연 속으로 가자, 디지털 디톡스 하자,
소음에서 벗어나자.”
그는 손으로 테이블을 쳤다.
“그게 다 정상인 기준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사람에게
고요는 힐링이 아니라 공백이에요.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상태예요.”
그는 거의 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시끄러운 곳만 찾아요.
여기가 시끄럽다는 걸 내가 아니라 누군가 말해줘야 하니까.”
그는 나를 똑바로 보았다.
“당신이 방금 시끄럽다고 말해줬잖아요.
그 말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이 현실인지도 몰랐을 거예요.”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의 말을 잊지 못했다.
우리는 고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소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고요는 세상이 꺼졌다는 증거였다. 그는 오늘도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 카페 한가운데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물을 것이다.
“지금, 시끄럽죠?”
그 질문은 소음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확인이었다. 사람들은 고요를 치유라고 믿지만, 어떤 사람에게 고요는 벌입니다. 그는 그 벌을 피하기 위해
세상의 볼륨을 대신 빌려 쓰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