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하는 선택?
오전 11시 50분.
오전과 오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간대가 있다.
사람들은 그 시간을 애매하다고 부르지만,
나는 그 애매함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느낀다.
분주하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상태.
카페라는 공간이 가장 자기 자신에 가까워지는 시간.
나는 종종 왔던, 이 카페의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출입구가 보이고, 카운터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은 위치였다.
그가 처음 들어온 날도 그랬다.
잘 빗은 단정한 7:3 가르마 헤어스타일
꽤나 높고 반듯한 그의 콧대 위에 놓여있는
선글라스는 안경프레임은 은색이었고,
선글라스의 안경알은 좁고 직사각형으로 클래식했다.
반으로 접어서 잘 두른 목도리,
네이비색 피코트를 입은.옷차림은 깔끔하고 스마트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항상 외투를 벗지 않았다.
잠시 문 앞에서 멈춰 섰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대신 직선으로 걸어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매일 와서 똑같은 행동을 하나 싶을 정도로 그의 행동은 단호했다.그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고, 거침없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나는 그가 카페 안을 눈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간다.
여전히 거침없고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다.
그는 그저 바리스타가 자신의 주문을 받길 기다렸다.
시선이 메뉴판 위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그저 계산대에 손만 올려둔 상태였다.
바리스타가 그의 앞으로 오자 그는 말했다.
“아무거나 주세요.”
목소리는 또렷했고, 머뭇거림이 없었다.
‘ 아무거나’라는 말은 살면서 종종 듣는 말이다.
결정하기 귀찮은 사람, 시간이 없는 사람, 혹은 자기 취향에 무심한 사람. 나는 그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하며, 꽤 멋진 옷차림과 달리 먹고 마시는 취향이 무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살짝 그가 궁금해졌다.
나는 몇 주 동안 같은 시간 금요일에 그가 오는 카페에 갔다. 그는 항상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바리스타는 항상 같은 반응을 보였다.
“진짜 아무거나요?”
“네.”
“아메리카노로 드릴게요.”
“네.”
그 대화는 빠르게 끝났다.
몇 주 동안 이 카페를 방문해 그녀와 안면을 튼 나는 그녀와 종종 담소를 나눴다.
그녀는 그가 아무거나 주문하는 것을 좋아했다.
동시에 “아무거나 주세요”라는 말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자기 인생인데요.”
그녀는 말했다.
“메뉴 하나 고르는 것도 못 하면서
뭘 안다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한 번도 그의 “아무거나 주세요”라는 주문에 망설인적이 없었다. 결정을 미루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는 사람.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메뉴를 한참 고르거나, 남자처럼 선택하지 못하는 손님들을 보면 답답해하곤 핬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까다롭지 않은 최악의 손님이었다.
남자는 그녀가 마음대로 내준 음료들을 곧잘 마셨다.
그 남자는 자신의 커피가 어떤지에 대해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거나 주문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일까? 맛있다, 쓰다, 연하다. 그 어떤 평가도 하지 않았다.
컵을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마셨다.
마시는 동안 고개를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늘 창가에 앉아 있었지만, 밖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는 그가 매우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보통 무언가를 보지 않으려 할 때, 오히려 더 움직인다. 반대로 무언가를 응시할 때,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반대였다:
그는 커피를 마시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주문한 적이 없고, 창 밖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고 멍을 때린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항상 같은 메뉴 드시네요.”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그렇죠.”
“안 질리세요?”
그는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웃는 얼굴을 지었다.
“질리는 건 비교할 때 생기는 감정이잖아요.”
나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비교를 안 하세요?”
“할 필요가 없어서요.”
그의 말은 매끄러웠다.
너무 매끄러워서 질문을 한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행동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는 항상 같은 동선으로 움직였다. 의자를 밀 때도,
컵을 들 때도, 일어설 때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항상 정확했다. 그는 카페 안에서 단 한 번도 시선을 바꾼 적이 없었고, 자신의 어떤 궤적, 동선이나 움직임에 있어서 힌치에 망설임도 없다.
이상했다. 그런 그가 아무거나 주문한다는 사실이.
바리스타인 그녀는 여전히 그 남자를 대신해 선택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동시에 선택을 남에게 맡기는 그를 별로라고 생각했다.
“제가 골라주면 그분은 편하잖아요.”
그녀는 그 말에 약간의 우월감을 실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카페건물의 뒤편, 흡연구역 근처에서 우연히 대화를 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건요?”
“이건요?”
모두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매번 카페 매니저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건 네가 판단해.”
“그 정도는 네가 해.”
“왜 그걸 또 물어봐.”
매니저의 목소리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좀 주도적으로 해봐.”
그 말이 들렸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려 매니저와 대화하고 있는 바리스타가 그녀가 맞는지 확인했다.
다시 남자를 보았다.
그는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꺼내 들고 있었다.
카드를 내밀 때,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무언가를 알아챈 건 그 찰나였다.
바리스타 그녀가 그의 카드를 받기 위해 조금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는 카드를 놓쳤고, 바닥 쪽으로 손을 엉성하게 뻗으며, 바닥을 더듬거리며, 천천히 앉으며 카드를 찾는다.
그의 고개와 시선은 여전히 꼿꼿하고 한 곳 만을 향하지만, 손은 이리저리 바닥을 더듬거리기 바쁘다.
그제야 모든 장면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는 메뉴를 고르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메뉴판을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방향을 고를 수 없었고, 시선을 선택할 수 없었고,
공간을 인식할 수 없었다.
그에게 “아무거나 주세요”는 회피가 아니라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리고 흡연구역에서의 매니저와 대화한 그녀.
바리스타는 그의 선택을 대신해 주며, 자신이 주도적인 인간이라 믿었지만, 정작 자신의 업무에서는 단 하나의 결정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에, 나는 그와 그녀를 다시 보았다.
의심할 수 없는 행동과 확신에 찬 말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와 그녀가 이제야 보인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여전히 거침없이 군더더기 없는 동선으로 카페를 나갔다.
카페 통유리를 통해, 그가 한쪽 손을 앞으로 뻗으며, 주춤주춤 느리게 카페에서 멀어진다.
그의 지팡이가 왼쪽 한번 오른쪽 한번 번갈아가며 땅을 치는 소리도 함께 멀어진다.
그의 지팡이가 땅을 치는 소리가 옅어졌을 때,
바리스타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 매니저님, 컵 설거지 지금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매니저님. 손님이 테이블에 음료를 쏟았는데,
지금 가서 닦을까요? 나중이 닦을까요? “
카페 매니저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대답한다.
“ 제발, 그런 거라도 알아서 좀 해.”
그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보였지만,
사실은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선택하지 못하는 타인을 답답해했고,
남의 선택을 대신해 주며 스스로를 주도적인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자신의 일 앞에서는,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는 선택이 불가능한 상태를 선택하지 않는 태도라 착각하고, 누구는 선택하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선택이란 무엇일까.
그날 이후로 나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않게 되었다.
아? 이것은 나의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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