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부조리한 바다, 항해하는 인간

by 이수염

“구원은 없다.”

“부조리는 인간의 요구와

세계의 침묵 사이에서 태어난다.”


알베르 카뮈는 인간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균열을 정확히 짚어낸 사상가였다.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요구하지만, 세계는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 이 침묵의 불균형, 이 설명되지 않는 간극을 그는 ‘부조리’라 불렀다.


부조리는 세상이 무질서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우리의 질서 감각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세상은 인간의 도덕적 기대를 고려하지 않으며, 노력과 보상, 선함과 결과 사이의 인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카뮈가 예리했던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는 세계를 악하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세상은 잔혹한 음모를 꾸미지도, 인간을 벌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그 침묵 앞에서 질문을 던진다.

“왜?”

그러나 질문은 공중에 남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 인간은 선택해야 한다.

의미를 만들어내는 허구에 기대거나, 혹은 그 부재를 정직하게 견디거나.

카뮈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철학적으로 용기 있는 태도였다.



1. 구원이 없다는 말의 오해


카뮈의 사유가 대중적으로 소비될수록 ‘구원은 없다’는 문장은 종종 오해된다.

이 문장은 허무주의의 선언처럼 받아들여지거나,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처럼 왜곡되기도 한다.

그러나 구원이 없다는 말은 윤리의 종말이 아니라, 윤리의 시작에 가깝다.


구원이 없다는 것은 외부에서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 정당화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며, 세상이 나의 선택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나의 삶에 대한 해석권이 나 자신에게로 귀속된다는 의미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그랬다”

라는 말로 모든 것을 밀어낼 수 없다.

구원이 사라진 자리에 책임이 남는다.

그래서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거워진다. 그는 이제 자기 삶의 결과를 자기 삶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세상이라는 바다


삶을 항해에 비유하는 말은 흔하다. 그러나 이 비유가 철학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다는 인간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

바다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날이 맑다고 해서 항상 잔잔하지 않으며, 폭풍 속에서도 고요할 수 있다.

기도는 파도를 잠재우지 않고, 성실함은 풍랑을 피해 가지 않는다. 이러한 바다의 속성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와 닮아 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불공정하다고 말할 만큼 명확한 기준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저 작동한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는 이 바다의 성질을

처음으로 명확히 언어화한 개념이다.



3. 물결로서의 인간


그러나 항해 중에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바다만이 아니다. 수많은 물결들, 그리고 그 물결 속의 인간들이다.


어떤 인간은 부조리를 인식한다.

어떤 인간은 그 개념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부조리를 아는지의 여부가 인간의 태도를 하나로 규정해주지는 않는다. 부조리를 인식했다고 해서

반드시 냉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부조리를 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규칙이나 태도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 순간 ‘부조리를 안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또 하나의 규범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세계에는 알고도 지켜지지 않는 규칙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4. 태도는 획일화될 수 없다


인간의 태도는 상황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같은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이라도, 어떤 인간을 마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에 따라

거리와 온도는 달라진다. 그가 부조리를 아는지, 선한지, 악한지, 혹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지에 따라, 내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상대주의의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다.

관계는 이론이 아니라 접촉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5. 관계는 부조리 이후에도 남는다


세상이 부조리하든, 의미로 정의되든,

인간들은 남아서 살아간다.

사랑하고, 상처 주고, 책임지고, 회피한다.

부조리를 아는 인간과 모르는 인간은 같은 조직 안에서 일하고, 같은 관계 안에서 부딪힌다. 그래서 부조리 이후의 철학은 세계에 대한 정의에서 멈출 수 없다.

그 다음 질문은 반드시 인간 사이로 이동한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6. 카뮈는 위대한 탐험가였다


카뮈는 위대한 탐험가였다.

그는 바다라는 세상의 부조리를 밝혀냈다.

우리는 그의 업적을 이어나가야 한다.

부조리라는 바다에 반항하는 탐험가를 넘어, 바다를 어떻게 넘을지 생각하며 조타를 잡아야 한다.


카뮈는 바다가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바다가 드러난 이후,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항해할 것인가.



7. 반항 이후의 과제


반항은 중요했다.

그러나 반항은 영구적인 태도가 될 수 없다.

분노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현 상태를 부정할 뿐이다.

삶은 부정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조리 이후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다.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 기술,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는 기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기술.

이것은 영웅적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과제다.



8. 조타를 잡는 인간


조타를 잡는다는 것은

바다를 통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바다를 이해했다고 착각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때로는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멈추며, 때로는 물러난다.

이 모든 선택은 구원 없이 이루어진다.

확증도, 보상도 없이.


그래서 조타를 잡는 인간은 강한 인간이 아니다.

자기 한계를 아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의 방향을 고민하는 인간이다.



9. 부조리를 아는 것, 그 이후


부조리를 아는 인간과 모르는 인간은 같은 바다를 항해한다. 그러나 차이는 분명하다. 모르는 인간은 파도에 의미를 묻는다. 아는 인간은 파도를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조건 속에서 자신의 항로를 선택한다.


삶은 구원되지 않는다.

세상은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간다.


카뮈는 바다를 드러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바다 위에서 조타를 잡는 일이다.

부조리 이후에도 관계는 남고, 선택은 반복된다.

그 반복 속에서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부조리 이후의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