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어른의 미성숙함
종종 이런 문장을 본다.
“진정한 어른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관리할 줄 안다.”
짧고 명확하다. 고개도 끄덕여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 문장이 얼마나 현실적인 기준인지도 잘 안다.
감정이 말투가 되고, 말투가 관계를 망가뜨리는 순간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
그런데도 이 문장을 마주할 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머뭇거린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가 빠진 것 같고
맞는 말인데도 전부는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아마 그 이유는
이 문장이 ‘어른다움의 결과’는 말해주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지워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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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른은 나이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사람이다
어른이라는 단어를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시간을 많이 통과해온 사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간을 통과했다는 건
사건을 겪었다는 뜻이고
관계를 맺고, 실패하고, 후회하고
어떤 선택의 대가를 감당해봤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른에게는 자연스럽게
경험이라는 자원이 쌓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든 시간이 경험으로 남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사건을 흘려보내고
어떤 사람은 사건에 걸려 멈춰 서며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자기 안에서 해석해
하나의 태도로 남긴다.
우리가 ‘진짜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아마 여기서부터 생겨났을 것이다.
시간을 많이 산 사람과
시간을 자기 안에 남긴 사람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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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인과 어른을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많을수록 어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단의 잣대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더 많은 경험이 있다 더 알 것이다 어른일 것이다.
이 논리는 빠르고 편리하다.
그 증거는
미성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성인 직전의 나이라 해도
우리는 쉽게 말한다.
“아직 애잖아.”
생각의 깊이나 태도와 무관하게
법적 기준 하나로
존재 전체를 미성숙한 쪽으로 밀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성인이라는 제도적 구분과
어른이라는 태도의 문제를
같은 선 위에 놓고 생각해온 셈이다.
그래서
나이는 많지만 태도는 미숙한 사람 앞에서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진정한 어른’, ‘품격 있는 어른’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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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른은 아이의 반대말이지, 젊음의 반대말이 아니다
어른이라는 말은
아이와 상반되는 개념이지
젊음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 적은 어른이 나이 많은 아이를 훈계한다”는 문장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언어는 이미 알고 있다.
어른과 아이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아이는
지금의 감정이 전부라고 느끼고
지금의 관점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쉽다.
어른은
지금의 감정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알고
내 관점이 하나의 관점일 뿐임을 인식하며
불편의 일부를 스스로 감당할 줄 안다.
그래서 어른은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명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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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로라는 단어가 주는 힌트
‘장로’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건 단순히 가장 늙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장로는
가장 긴 시간을 늙어오면서
수많은 경험을 놓치지 않고
자기 안에 남긴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장로는 말이 많지 않고
훈계하지 않으며
정답보다 이야기를 남긴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이미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로는 스스로를 장로라 부르지 않는다.
그 호칭은 언제나 타인이 부여한다.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태도로 드러났을 때만 가능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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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른은 기본을 무시하지 않는다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이
인사를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어른 역시 기본을 건너뛰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잘못된 태도를 넘기거나
타인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배우는 존재라면
어른은
그 말을 스스로 꺼낼 줄 아는 존재다.
그리고 중요한 건
어른은 그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과는 굴복이 아니고
감사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책임의 경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그 말을 담담하게 할 수 있다.
어른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기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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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성숙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고마운 일 앞에서는 어른이지만
미안한 일 앞에서는 아직 아이일 수 있다.
이건 모순이 아니라
인간의 구조에 가깝다.
성숙은 한 번에 모든 방향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다움은
완성된 상태라기보다
영역별로 들쭉날쭉한 태도의 지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쉽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려는 사람을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 표현은
우월함의 선언이 아니라
도달하기 어려운 상태에 대한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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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정한 어른이란
표면적으로 말하면
진정한 품격 있는 어른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문장은
결과만 남긴 요약일 뿐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어른은 감정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데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다.
인간임을 인정하고
자신이 언제든 미숙해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며
‘나는 어른이다’라는 확신을 의심하고
잘못을 사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경험들을
권위가 아니라 태도의 자산으로 남기는 사람.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도착이 아니라
매번 선택의 문제다.
완벽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은 태도를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려는 방향성.
그래서 어른은
자신이 어른임을 증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자리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다시 선택하는 사람이다.
아마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어른’, ‘품격 있는 어른’이란
이미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부르는 말일 것이다.
당신은 단지 성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어른이 되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