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들에 대한 상상 하나

욕실

by 이수염

나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상상한다. 주제 역시 가지각색이다.

한 자리에 카페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상상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머리를 감다가 문득하기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모여 술자리를 하거나, 술을 꼭 마시지 않더라도 만나서 시간을 보낼 경우에

나는 갑자기 무언가 상상하고 묻는다


" 이러면 어떨까? "


내 말을 듣는 친구가 누구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슷하게 대답한다.


" 애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왜 해? "


나는 짧게 대답한다. " 재밌잖아. "

애라는 이유로 상상을 하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못하게 된다면, 나는 너무 불행할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저런 대답을 하는 친구도 약간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는 상상은 뜬금없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오늘 아침에 상상을 하게 된 것은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용은 대충 아래와 같다.

이 나라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습하고 안개가 잦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하얀 정사각형의 도시들이 반듯한 직선 길로 균일하게 나눠져 국토를 형성한다.

이 모든 도시들이 흰색이지만, 유일하게 은색으로 된 수도가 있다.


나라는 대체적으로 평화롭지만,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종종 검은 뱀들이 나타나서 도시 사람들을 습격하고 심지어는 잡아먹는다.

그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나타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따금씩 하늘에서 대기가찢어지는 소리와 그때마다 가지각색들의 오로라들이 관측되고, 아가라라라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수도에 빈번하게 들이닥치는 태풍이다.

상공에서 보면 구름들이 회오리치며 수도를 뒤덮고 있는 모양새이다.

엄청난 강수량과 돌풍 등을 동반하기에 분명 인명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불가사의한 점은 각 도시에서 검은 뱀에 의한 피해사례가 발생 할 때마다 수도의 하늘을 태풍이 뒤덮는다는 것이다.


검은 뱀이 먼저인지, 수도에서 관측되는 태풍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민들은 태풍이 검은 뱀을 만들어낸다는 둥, 국가에서 그럴 리가 없다는 둥 하며 다투기 바쁘다.


태풍이 수도 상공을 뒤덮고 나면, 수도 일대에는 홍수가 난다. 그리고 곧 전국에 비가 내린다.

검은 뱀들은 물에 아주 취약한지, 빗물에 휩쓸려 수도상공에 휘몰아치고 있는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소멸한다. 분명 약간의 태풍이 야기한 홍수나 검은 뱀의 출현으로 인명 피해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이후엔 항상 얼마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상상을 끝 마치면서 생각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태풍과 검은 뱀의 출현이 줄어든 이유를 모르겠지만, 요즘 너무 추워서 내가 이틀에 한번 샤워를 한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샤워를 해야 했어.. 미안합니다.‘


샤워를 마친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허공과 동시에 내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내고, 수건을 허공에 탁탁 털었다.

그리고 어느 때처럼 욕실에서 울리는 소리로 말했다. " 아~개운하다."

샤워기를 뽑아 들어 욕실 입구부터 거품이 물에 둥둥 떠 돌고 있는 은색 배수구까지 흰색 타일들에 떨어진 검은 머리카락들을 물줄기를 쏘며 속으로 생각했다.


' 자, 구원의 시간이다! '


나의 이런 상상은 샤워와 함께 끝났기 때문에, 그 이후에 욕실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샤워하다가 갑자기 배수구에 뱅뱅 도는 거품을 보며, 욕실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샤워기 물줄기로 청소하며, 나는 잠시 신이 되었다가,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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