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 대한 단상
나에게는 두 살 터울 남동생이 하나 있다.
우리는 사이가 참 좋다. ' 사이가 좋다 '라는 것이 매우 편안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내 동생에게 느끼는 편안함은
정숙해야 하는 도서관의 고요한 편안함이다.
도서관에서는 ' 정숙 '이라는 규칙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주는 불편함과 답답함보다는
그것에서 오는 고요함이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낡은 서재 냄새와, 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지만,
조용하게 규칙을 지키고, 각자의 취향껏 책을 고르고 읽는 그런 편안함.
우리는 늘 함께였다. 물론 감정이 서로 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싸움의 빈도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그림을 그렸고, 공을 찼으며, 말도 안 되는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이, 서로의 유치함을 많이 공유한 것 같다.
동생은 나에게 아직 남아있는 미성숙한 아이와, 어른이 되어버린 점을 모두 보듬어준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잘 안 쓰는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영혼의 안식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안타까운 점은 나는 거리감의 유지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어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에게 서운해하곤 하지만, 그는 그마저도 차분히 유지해 준다. 그건 마치 몰아세우지 않는 태도와 같아서, 우리의 유대감을 지켜주는 것 같다.
연말을 맞아 동생이 본가로 내려왔다.
그는 타지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물론 나도 따로 살긴 하지만, 타지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이 언제부터인가 그가 나보다 어른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나보다 성숙한 어른일 수도 있다.
가끔 이렇게 시간을 보낼 때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받거나, 용무를 처리하는 전화를 하는 그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언가 대견하고, 벅차오름을 느낀다.
형제라는 것이 사실은 형과 동생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형과 동생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이 형제의 의미 같다.
취향과 기질을 뛰어넘는 유대감이라는 게 존재한다.
나와 동생은 본질적으로는 매우 다른 사람 같다.
아마 형제가 아닌 상태로, 주변에 있었다면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싫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지금껏의 시간 사이에 겹겹이 유대감을 쌓아갔던 것 같다.
나는 말을 제법 직설적으로 뱉는 편이지만, 동생에게는 말을 제일 다듬어서 하곤 한다.
도서관 같은 내 동생에 대한 규칙이다. 물론 아무리 조용히 말한다 한들, 누군가가 다가와
'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라고 하듯이 동생에게 내 말이 날카롭게 들릴 때도 있겠지만.
그는 노력을 알아주려는 사람이다.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서관 사서처럼 차분하게 말한다.
" 그 표현은 좀 다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나는 동생을 매우 사랑한다. 그는 무심하고 애틋하다. 친밀하며 낯설다.
동생은 나랑 말하는 방법도 다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와 나누는 대화가 침묵 속의 비명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이지만, 때때로 동생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와 동생은 서로의 말에 연거푸 되묻는다.
서로의 말을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하며 질문한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 마음이 우리의 유대감 아닐까?
그게 내가 동생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얼마 전에 이해에 관한 글을 썼었는데, 나는 이해를 위치 이동이고, 세계관으로의 진입이라고 표현했었다.
이러한 개념과 태도가 어쩌면 나는 동생과의 관계에서 자리 잡은 것 같다.
동생의 언어는 시 같다.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그래서 부드럽지만, 때로는 함축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나와는 다른 언어에 불편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차분하게 듣는다, 조용히 되뇐다, 부드럽게 질문한다.
나는 이러한 이유가 내가 동생의 세계관으로 진입을,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해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건 동생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더 잘해주는 것 같지만.
사람마다 장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좋은 시집 한편을 곁에 두고 읽는다면, 그 짧은 문장, 많은 감정이 함축된 단어 하나가 나의 삶에 풍요를 주는가.
도서관 같은, 좋은 시집 같은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 네가 내 동생이라서, 아니 너랑 형제라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