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끝에 떠오른 단상

마음을 슬로조깅하자

by 이수염

12:28일 11:56분.

29일까지 4분도 남지 않았다.

내일이 되기까지 4분, 아니 이제 3분 전이다.

곧 내일이 되면 올해가 3일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가 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을까?

지금도 한 해의 끝에 있긴 하지만, 마지막 날은 아니니까.

올해는 나에게 어땠을까?

분명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겠지.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엔 한 해를 넘기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신경 쓰거나, 매년 나를 지나가는 해를 체감하는 기분을 느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걸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물론 마무리하는 모임이라든지, 누구와 시간을 보낸다든지 이런 것들도 해왔겠지만, 내가 말하는 ‘ 한 해 보내주기의 체감 ’ 은 이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보내거나, 누군가와 단둘이 보내거나 심지어는 나 혼자 조용히 넘어갈 때에도

벅차오름, 아쉬움, 후회, 뿌듯함, 새로운 다짐.. 등등

뭐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 한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든다.

덩어리 같은 감정의 범람과 사막화를 오가며, 지난 몇 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앞서 말한 개인적인 기분이나 마음들을 깊이 느끼며 보내주지 못한 나의 시간들이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난 몇 해 동안 나는 아마 살면서 내면적으로 가장 감정이 널뛰는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감정적으로 가장 메말랐던 시기였을 수도 있겠다고.

물론 나는 감정을 완충하여 조절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내면에 감당 못 할 폭풍 후가 없을 때의 이야기였나 싶다.

스스로 흡수시키지도 못할 양의 감정이 범람했을 때,

내 마음은 단지 감정의 범람을 겪었을 뿐, 흡수하지 못해 더욱 메마른 사막화를 겪고 있었던 것 같다.

피부가 악건성인 사람이 물 세수만 하고, 토너나 크림 등을 바르지 않아서, 물 세수가 오히려 피부를 건조하게 만드는 그런?

내면의 감정을 악순환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요동치니까 나의 이성은 당연히 억눌렀을 것이다. 그러니까 올바르게 감정을 조금 덜어 내어 쓴다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

그렇게 돌봐주지 못하고 지나간 몇 해의 내 시간들을 이제야 떠올린다.

어렵다. 세상의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제일 쉬운 게 내 마음이었는데, 이제 이것도 어렵다: 그래서 계속 절전 버튼을 누르는 것 같다.

남은 올해를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희망차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지만, 또 그런 요란한 것들을 할 만큼의

기운은 없다. 그렇다고 계속 밑으로 쳐지는 것도 싫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의지를 불태워도, 그 의지를 유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은 마음을 슬로 조깅처럼 써보려고 한다. 솔직히 지금도 가만히 있고 싶은 마음이 순간 커지지만, 그래도 그렇게 슬로 조깅하듯 내년까지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 보자.

뛰는 듯 걷는 듯.

12월 29일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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