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을 만드는 여자

타자(他者), 이 장면에 속하지 않는 사람

by 이수염

금요일, 새벽 01:05분


나는 오늘도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손목시계의 각 바늘들은 각기 다른 움직임으로 제할일을 하며 가고있다.

카페, 이 공간은 항상 일정하다. 그 일정함을 시침,분침,초침처럼 각기 다른이들이 채울뿐이다.


창가에는 꽃을 든 거구의 남자가 있다. 그는 꽃을 너무 오래 들고 있다. 줄기는 약해졌고, 꽃잎은 가장자리부터 마르고 있다. 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을 보고 있다. 노인은 작은 개를 안고 들어온다. 노인과 개의 얼굴이 닮은것이 묘하다. 문 위의 종이 울린다. 늘 같은 간격. 늘 같은 높이. 새벽시간인 탓인지 청소하는 여자는 바닥을 쓸고 있다. 먼지가 없는 곳을. 그녀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아이는 창밖을 본다. 아이의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두리번거려본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보고 있는 밖을 나도 따라본다.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빛만 번진다.


웅웅거림이 있다. 이 공간의 배경음. 이곳의 숨소리처럼 낮게 깔린다. 모두 각자가 정해놓은 듯한 제자리다.

나는 컵을 만진다. 늘 같은 음료와 늘 같은 컵의 온도.

따뜻한 이 온도는 변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 다른사람들로 채워져있는 카페이지만, 내가 주문한 음료를 담은 컵의 온도는 항상 정확하다. 그런데 오늘, 무언가가 덜 맞는다. 미세하게 컵의 온도가 덜 따뜻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런 것에 이유를 찾으려 하면 머리가 아프기때문에. 나는 주위를 돌리려 카페 안을 한 번 더 훑는다. 그리고 그 자리를 본다.


기둥 뒤, 늘 비어 있던 자리. 누군가 앉아 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다른 곳을 먼저 본다. 꽃, 노인, 아이, 청소기, 창문. 모두 정상이다. 다시 본다.


‘ 늘 비어 있는 자리..?‘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모두 정상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낀 자리를 다시 본다.


그녀다. 나는 그녀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른다. 문이 열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종이 울린 기억이 없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손은 테이블 위에 얹혀 있다.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 그녀는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 동시에 나는 이 공간에 그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의 생각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다시 그녀를 본다. 그녀만 조금 더 선명하다. 윤곽이 또렷하다. 다른 인물들은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전경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늘 그렇듯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의 나이를 짐작하려 한다.

어리다. 아니다.비슷하다. 누구랑? 아니다. 더 많다.

얼굴이 고정되지 않는다.내가 보는 순간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익숙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기억의 어딘가에 어떤 얼굴인지 모르겠는 얼굴과 그녀의 알굴이 겹친다. 나는 눈을 깜박인다. 창가에 남자가 들고 있던 시든 꽃의 잎 하나가 떨어진다. 떨어지는 속도가 약간 늦다.


나는 그걸 보며, 동시에 그녀를 번갈아본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컵을 들어 다시 컵의 온도를 손바닥으로 느껴본다. 공간이 아주 얇게 밀린다. 개를 닮은노인의 손이 노인을 닮은 개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 속도가 일정하다. 늘 같던 리듬.늘 같은리듬?!

언제부터 나는 이 공간의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늘 같은’ 이라고 느낀걸까?


나는 그녀를 다시 본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 정확히.

그녀는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눈인사를 하는 듯 하다. 마치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얼굴. 심장이 한 박자 늦는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창밖을 본다. 빛이 번진다. 형태가 없다. 나는 다시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다. 이번에는 그녀가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기울인다. 질문이 아니다. 확인이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그녀를 본 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늘 이 자리에서 어떤 시점에 그녀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걸까? 소리는 없다. 차분한 그녀의 얼굴과 상반되는 나의 머릿속이었다.


― 이번엔 늦었네요.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 없다. 그러나 분명히 안다. 그리고 지금도 분명히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들렸다. 바리스타들이 쓰는 커피머신의 웅웅거림이 멈춘다. 공간이 조용해진다. 노인의 손이 공중에서 멈춘다. 꽃잎이 반쯤 떨어진 채 정지한다. 청소기의 솔이 바닥 위에 고정된다. 아이의 눈동자가 깜박이지 않는다.


정지.


이곳이 처음으로 완전히 멈춘다. 그녀만 움직인다.

천천히 숨을 쉬며 나를 본다. 이제 확실하다.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은 그녀와 나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몸이 가볍다.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이 희미하다.


한 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처럼 아니면 예정된 순서처럼. 나는그녀와 출입문 쪽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출입문이 색이 전보다 선명하다. 손잡이에 시선이 간다. 나는 정지된 것 같은 이 공간을 걷는다. 그녀의 시선이 등을 따라온다.


나는 출입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바라본다.

그 순간, 웅웅거림이 갑자기 커진다. 정지한 것 같았던 인물들이 동시에 미세하게 떨린다. 꽃잎이 바닥에 부딪히며, 꽃을 든 남자의 눈동자만 떨어진 꽃잎을 내려다본다. 남자자체는 정지된 채로.


개를 닮은 노인의 손이 노인을 닮은 개의 등을 다시 쓰다듬으려는 듯 손가락 사이로 털이 흔들린다. 노인을 닮은 개가 울지 않는 입이 미세하게 벌어진다.

청소하는 여자의 걸레질의 물자국이 미세하게 줄어든다. 정지된 아이의 눈동자가 내 쪽을 향한다.


그러다 시선들을 느낀다. 처음으로, 아니 처음일수밖에 없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얼어붙었다. 움직일수가 없다고 느껴진다. 아니 움직이기 싫은 걸지도 모른다. 긴장이 된다.

기둥 뒤의 그녀가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날 때 나는 소리가 없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는다.

정지된 세계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는 출입문 앞에서 멍하니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볼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그녀는 익숙하고 낯설다.어리고 늙었다. 그녀는 웃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는다.


그녀가 입을 연다.

이번엔 분명히 들린다.


“아직이에요.”


순간, 공간이 터진다. 소리가 동시에 몰려온다.

종이 울리고, 꽃이 떨어지고, 물걸레가 넘어지고,

개가 짖고, 아이가 고개를 돌린다. 웅웅거림이 귀를 찢는다. 나는 급격하게 찾아오는 두통과 자극들에 눈을 질끈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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