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문 앞에서
새벽 1시 5분.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은 제자리였다. 꽃을 든 남자. 노인과 작은 개. 청소하는 여자. 창밖을 보는 아이.
그리고 기둥 뒤의 그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지 않았다. 문 앞도 아니었다.
처음 앉아 있던 그 자리. 그러나 다르다.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내 모든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카페, 이 공간의 공기가 얇다. 투명한 막 하나가 벗겨진 것처럼.
기둥 뒤의 그녀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다. 나도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나는 입을 연다.
“당신은…”
목소리가 마른다. 그녀가 먼저 말한다.
“기억 안 나세요?”
낮다. 차갑다. 감정이 없다.
나는 고개를 저어본다.
그녀는 미소 짓지 않는다.
“항상 여기까지 와요.”
나는 이해하지 못한 척한다.
“여기까지라니.”
그녀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대신 나를 본다.
“문 앞까지.”
심장이 아주 천천히 뛴다.
나는 묻는다.
“여기가 뭐죠.”
그녀는 잠시 침묵한다. 주변의 인물들은 여전히 반복을 수행한다. 꽃은 들려 있고, 청소는 이어지고, 노인의 손은 개를 쓰다듬는다. 그녀만 이 리듬에 속하지 않는다.
“당신이 멈춘 곳.”
그녀의 말은 짧다. 나는 웃지 않는다.
“내가 멈췄다고요?”
“네.”
단정이다.
“무엇을..언제.”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 내가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가려던 날.”
문장이 공간에 남는다. 나가려던 날. 나는 기억하려 한다. 기억이 없다. 그러나 몸은 기억하는 듯 신경이 곤두선다. 문 손잡이를 잡았던 감각. 차가운 금속.그리고 멈춤. 나는 묻는다.
“밖에 뭐가 있죠.”
그녀는 시선을 잠깐 창밖으로 옮긴다.
빛만 번진다.
“당신이 감당해야 할 것.”
“구체적으로.”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여기가 편하지 않나요.”
나는 주변을 본다. 왜인지 카페 안의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 안에 있는 사람 아무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행동 다음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러한 것들을 왜 알고 있는지 의문이 앞서기보다, 어떤감정이 먼저 깊은 곳에서 느껴졌다. 안전하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가 다시 말한다.
“여긴 당신이 만든 구조예요.”
나는 고개를 든다.
“내가요?”
“시간을 잘라서.”
그녀의 말은 단정하다.
“반복하면 안전하니까.”
공간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나는 노인을 본다. 그는 개를 안고 있다. 개는 나를 보지 않는다. 나는 꽃을 본다.
꽃은 여전히 시들어 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본다. 아이는 창밖을 본다. 밖은 없다.
나는 묻는다.
“당신은 뭐죠.”
그녀는 잠시 나를 본다.
그 시선에는 피로도, 애정도 없다.
“당신이 놓친 쪽.”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덧붙인다.
“나가야 했던 쪽.”
침묵.
나는 묻는다.
“그럼 당신은 밖에서 온 거예요?”
“아니요.”
그녀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여기서 남은 쪽이에요.”
나는 숨을 들이쉰다.
남은 쪽. 그 말은 내 안에서 어디에 닿는다.
“나는… 나갔나요?”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다.
“매번 거의.”
“거의?”
“문 앞에서 멈춰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정하다.
“왜.”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내 손을 본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 손을 본다. 손잡이를 잡은 적이 있는 손. 그러나 끝까지 문을 움직인적은 없는 손.
그녀가 묻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죠.”
나는 반박하려다 멈춘다.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을 피하고 있는 감각.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그녀는 잠시 눈을 감는다.
“일이 아니라 선택이었어요.”
선택. 그 단어는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보니 여긴 반복뿐이다. 선택은 애초에 없는 공간이었다.
그녀가 말한다.
“당신은 나가면 잃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뭘요?”
그녀는 주변을 본다.
“이 구조.”
나는 웃음이 날 것 같지만 웃지 않는다.
“이게, 이 공간? 카페요?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죠.”
그녀는 나를 본다.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감정이 스친다.
“안 무너지니까.”
침묵. 나는 문을 본다. 출입문은 여전히 거기 있다.
문 손잡이가 나와 눈을 맞춘다.
그녀가 말한다.
“밖은 계속 변해요.”
“그래서요.”
“여긴 멈출 수 있어요.”
나는 묻는다.
“그럼 당신은 왜 나가라고 하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강요하지 않아요.”
잠시 멈춘다.
“하지만 당신은 알아요.”
나는 더 묻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번에는 공간이 멈추지 않는다. 꽃은 떨어진다. 노인은 숨을 쉰다. 개가 꼬리를 흔든다. 물걸레질이 계속된다. 아이가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의자위에서 흔든다. 그러나 모두 희미하다. 나는 문으로 걸어간다. 그녀가 따라오지 않는다.
그녀가 말한다.
“이번엔 다를 수도 있어요.”
나는 묻는다.
“뭐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문 앞에 선다. 왜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본다. 잡지 않아도 손잡이가 차갑다. 하지만 익숙하다. 그리고 낯설다. 이 안은 반복이다. 밖은 변화다. 이 안은 안전하다.밖은 선택이다.
나는 손을 뻗어 차가운 손잡이를 잡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멈추는 것도 선택이에요.”
나는 손잡이를 잡은 채로 눈을 감는다. 공간의 웅웅거림이 커진다. 꽃잎이 떨어진다. 종이 울린다.
모두가 기다리는 듯하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채 눈을 감고 문앞에 서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이 내가 멈춰둔 시간이라면. 밖은 아직 움직이고 있을까.
나는 숨을 쉰다. 손바닥으로 차가움이 느껴졌다.
문을 당기거나 밀수도 있다 혹은 그대로 둘 수도 있다.
손잡이를 잡은 손가락들이 차가움에 까딱거린다.
웅성웅성 소리가 밖이 보이지않는 문너머로 들려오는듯하다.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문 틈으로 들어오는 웅성거리는 소리 속,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와 같지만, 전혀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 늘 내가 잡고있던 컵의 온기. 잡고있는 손잡이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포근함에 눈물이 흐른다 그녀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 정신이 들어? 일어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