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과 소외로부터 태어난 고립된 시간들
이 이야기는 늘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 물러난 사람,
타인에 의해 밀려난 사람,
어떤 선택 이후 되돌아가지 못한 사람,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이후
시간이 멈춘 사람들.
그들은 모두 살아 있다.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멈춰 있다.
그들의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확히는,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그들이 멈춘 자리의 풍경을 기록한다.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고,
그들의 소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따라간다.
그러나 인터뷰란
항상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기록자이고,
그들은 대상이다.
나는 움직이고 있고,
그들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이 후반으로 갈수록
그 구도는 조금씩 흔들린다.
반복되는 공간,
변하지 않는 시간,
회차별 소설속의 어떤 시간을 표시하는 것도
고정된 시점을 나타낸다.
처음에는 타인의 멈춤을 바라보던 화자가
결국 자신 역시 멈춰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가 왜 그 자리에 머물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사고였을 수도 있다.
스스로 돌아서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돌아설 기회조차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하다.
그 역시
소외된 시간 속에 있다.
소외란 반드시 고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시간만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상태.
혹은 아예 흐르지 않는 상태.
이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이유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화자는 그들을 통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윤곽을 조금씩 알아간다.
결국 이 이야기는
타인의 소외를 기록하는 이야기처럼 시작했지만,
자신의 소외를 인정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멈춘 시간은 외부에서 강요될 때도 있고,
스스로 선택한 결과일 때도 있다.
때로는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그날의 선택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날의 사고를 ‘운명이었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멈춰 선 자리에서
시간은 계속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선택이 아니었는지.
정말로 사고였는지.
정말로 움직일 수 없는지.
이 책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장면을 남긴다.
문 앞에 선 사람.
손잡이를 바라보는 사람.
나갈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는 사람.
그리고 화자의 새벽 1:05분처럼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1:05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멈춤을 보며
안도하거나,
연민하거나,
관찰자라 믿는 동안에도
우리 역시 어느 지점에서 멈춰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이 끝났다고 해서
그들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문은 남는다.
나는 지금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멈춰 있는가.
그리고 그 멈춤은
누구의 선택이었는가.
그 질문을 당신에게 남긴 채
이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