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지 않는 아이

깊이보는 눈동자

by 이수염

1시34분 금요일,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의 대화소리는 커다란 웅얼거림을 만들어낸다. 카페밖의 새벽의 고요함과는 대비된다. 새벽에도 카페의 창가는 늘 먼저 차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유리 너머의 바깥을 보려고 앉는다기보다, 바깥에 보이는 자신을 확인하려고 그 자리를 선택하는 것 같았다. 그날은 이상하게 한 자리가 오래 비지 않았다.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그 낯섦은 보통 몇 분 안에 정리된다. 누군가 돌아오고, 아이는 다시 아이가 된다. 그런데 세 시간째였다. 아이는 음료를 이미 다 마신 컵을 앞에 두고 있었다. 빨대는 반쯤 구부러져 있었고, 얼음은 다 녹아 컵 벽에 물기만 남아 있었다. 아이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종아리가 공중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그 움직임이 이상하게 일정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메트로놈에 맞춘 것처럼.


아이는 때때로 컵 안을 들여다 보있다.

깊이를 재는 사람처럼.


창밖을 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이의 시선은 유리창에 비친 실내를 보고 있었다. 어른들의 얼굴, 카운터 위의 카드 단말기,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손. 나는 아이를 인터뷰할 생각은 없었다. 아이를 인터뷰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왔다. 아이들은 아직 무장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먼저 나를 봤다.



“저기요.”


목소리는 또렷했다.

울지도, 떨지도 않았다.


“오늘은 사람들한테 질문 안해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내가 들고 있던 노트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맨날 사람들한테 질문하잖아요.”


아이는 내 옆자리를 툭툭 쳤다.


“오늘은 제가 물어봐도 돼요?”


그 말은 허락을 구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일처럼 들렸다.


나는 창가 맞은편에 앉았다.


가까이서 본 아이의 얼굴은 특별할 게 없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직 선이 굳지 않은 얼굴.

눈동자가 유난히 맑고 고요했디.


“부모님은?”


내가 먼저 물었다.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실 거예요.”


그 말은 믿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실처럼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문장 하나였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컵받침의 물방울을 이어 붙이고 있었다. 동그란 물방울들이 길처럼 이어졌다. 나는 노트를 펼쳤다. 평소처럼 질문을 적으려 했지만 연필이 잘 잡히지 않았다. 손에 힘이 조금 덜 들어갔다.


“어른들은 왜 약속을 자꾸 미뤄요?”


카페의 소리가 한 겹 벗겨졌다.

커피 머신의 증기 소리가 멀어졌다.


“상황이 바뀌니까.”

내 대답은 자동적으로 나왔다.


“상황이 바뀌면, 마음도 바뀌어요?”


아이는 물었다.


나는 처음으로 노트를 덮었다. 적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아이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빤히 봤다.

그 눈은 아직 계산하지 않는 눈이었다.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도, 공격하려 하지도 않는 눈. 그저 알고 싶어 하는 눈. 나는 묘하게 그 눈이 불안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테이블이 조금 높아진 느낌이 들었다.

아주 조금. 내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른은 책임이 많아.”


내가 말했다.


“그래서?”


아이는 되물었다.


그 “그래서?”는 짧았지만 깊었다.

나는 갑자기 설명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책임이 많으면, 선택을 미뤄야 할 때도 있고…”


문장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맑았던 표면이 얇게 굳는 느낌. 그 눈에서 처음으로 아주 작은 균열 같은 것이 보였다. 설명 하나가 덧붙여진 자리처럼. 아이의 발이 여전히 허공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속도가 느려졌다.


“왜 괜찮다고 해요?”


아이가 말했다.


“괜찮지 않은데.”


나는 멈췄다.


“괜찮아 보였어?”


“아니요.”


단호했다.


나는 웃으려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카페의 조명이 조금 어두워진 것 같았다.

아니, 내 쪽만 어두워졌다.


아이의 얼굴은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돼요?”


그 질문이 내려앉는 순간,

의자가 낮아졌다.


아니, 내가 낮아진 것 같았다.


아이의 눈높이가 조금 올라왔다.

아주 미세하게.


나는 허리를 폈다.


“다 알지는 못해.”


내 목소리가 얇았다.


아이의 시선이 더 깊어졌다.


그 눈동자 안에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

누군가 오래 앉아 있었던 자리처럼.


“그럼 왜 아는 척해요?”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노트를 내려다봤다. 글씨가 둥글어져 있었다. 적혀있던 문장이, 어린아이 글씨처럼 휘어 있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조금 짧아 보였다. 손등이 통통했다. 나는 급히 창문을 봤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했다. 턱선이 둥글어지고 있었다. 눈이 커졌다. 이마가 넓어졌다. 나는 눈을 비볐다.


다시 봤다. 이번에는 아이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광대에 각이 생겼다. 눈 밑에 아주 얇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입술이 굳었다. 아이의 발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닿았다.


탁.


작은 소리였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컸다. 카페의 다른 소리는 모두 멈춰 있었다. 누군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도,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만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른은,”

아이가 말했다.


“모르는 걸 숨기는 사람이에요?”


나는 대답하려 했다. 목이 잠겼다.

내 목소리는 높은 음으로 갈라졌다.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낮아져 있었다.

조용하지만 단단했다.


“왜 울어요?”


아이가 물었다.

나는 그제야 볼이 젖어 있는 걸 알았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 울어.”


나는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흔들렸다.


아이의 눈빛이 더 이상 맑지 않았다.

맑음을 지나, 무언가를 오래 본 사람의 눈이 되어 있었다. 아이의 앞에 놓여있던 컵의 깊이가 깊어졌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오려 했다. 다리가 짧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허공을 툭툭 찼다.

아이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아래였다.


“어른이 되면,”

아이가 다시 말했다.


“안 무서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반사였다.

사실은 무서웠다. 늘 무서웠다.

선택도, 실패도, 내가 점점 단단해지는 척하는 시간도.


아이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저는 아직 다 보여요.”


그 말이 카페 전체를 울렸다.


“어른들은 점점 안 보여요.”


나는 내 눈을 만졌다. 눈이 작아진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가려져 있었다. 아이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의자 뒤까지 번졌다. 내 그림자는 짧았다. 작고 흐렸다.

그때 카페 출입문이 열렸다. 누군가 아이를 불렀다.


“아들!”


아이의 어깨가 움직였다. 아이는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올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아이의 키가 커져 있었다. 나는 의자 위에 겨우 걸터앉아 있었다.노트는 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의미 없는 원들. 아이가 나를 내려다봤다.

그 눈에는 더 이상 질문이 없었다. 판단만 남아 있었다.


“어른은,”

아이가 말했다.


“망가진 다음에 되는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선고였다.


아이는 돌아섰다. 출입문이 닫혔다.

그 순간, 카페의 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커피 머신이 숨을 뱉었다. 누군가 웃었다.

의자가 끌렸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발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손은 다시 길어져 있었다.


창문을 봤다. 거기에는 분명 어른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눈이 조금 작았다. 나는 노트를 펼쳤다.

동그라미 사이에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내가 쓴 기억은 없었다.

적혀있는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되는 게 아니라

다 못 보게 되는 거예요.”



나는 펜을 떨어뜨렸다. 카페 문이 다시 열렸다.

창가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의 발이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아이를 인터뷰하러 가는 건지, 그 아이가 나를 다시 부르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의자가 조금 높았다.


아니, 내가 조금 작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나이가 아니라 보는 각도라는걸

하지만 그 각도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창문에 비친 나는 조금 전보다 더 또렷했다.대신, 무언가가 조금 더 지워져 있었다.


카페 안을 메우는 여러가지 소리들 틈에에서 바리스타들의 대화들의 소리가 내 귀에 슬며시 들려온다.


“오늘은 저 사람 아무한테도 질문 안하네요?”


“그러게요, 한 두시간째 창밖만 보고 있더라구요?“


“ 비친 자기를 보는건지, 밖을 보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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