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공족은 갈 곳이 없어 무기력감에 빠지고, 대학생은 온라인 강의가 가져온 과제 폭탄에 숨이 막히고, 취준생은 공채라는 탈을 쓴 채용연계형 공고에 맥이 빠지는 코로나 시국이다. 모두 본인의 얘기라는 건 안 비밀이다.
바깥세상이 흉흉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이불 밖은 위험해!) 더불어 집 한구석에서 운동을 하거나, 코딩을 배우거나, 파티 요리를 하는 등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아진 것 같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아니,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달고나 커피'가 대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처음 겪은 사람들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했던 '놀이'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집안에서 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낼 취미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취미'를 '잘'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가지고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취미는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자칭 타칭 취미 부자인 나의 이야기로 이 '놀이'에 대해 알아가 보고자 한다. 달고나 커피만 주구장창 만들 순 없잖아?
일단 어떤 취미를 가져야 할까? 질문을 던지면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막상 등록했는데 재미없으면 어쩌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해야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막막해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본인만의 기준을 세워 필터링을 해보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취미의 기준은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을 채워줄 수 있는 활동(들)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몸으로 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배드민턴을 쳤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있고, 땀을 흘리며 몸을 쓸 수 있으니 위의 조건을 두 가지나 만족하는 아주 좋은 취미였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를 따라 배드민턴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배우다 보니 재미있어서 레슨까지 받으며 열정적으로 하게 됐다. 반년 동안은 체육관에 매일 출석해 밤 12시까지 배드민턴을 쳤다. 운동 후엔 역시 시원한 맥주. 술도 매일 마셨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운동이 좋은 것은 그 자체가 '놀이'라고 느껴져 힘들고 스트레스받으며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아직 만족하지 않은 항목이 하나 있다.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던한 실패를 겪은 것 같다. 뭔가 대단한 걸 해야 할 것 같고, 목표를 잡아 성취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중국어 자격증 따기, 스노클링 자격증 따기, 하모니카 마스터하기, 유튜브 채널 운영하기 등 대부분이 목표 중심적이다. 하지만 취미는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니지 않은가?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목표로 삼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행동 그 자체를 목표로 두게 되었고, 이미 혼자서 하고 있는 취미가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가령 식물 키우기(자취할 때는 드루이드가 되어버렸다.), 테크 유튜브 정주행 하기, 맥주 마시면서 넷플릭스 보기, 요리하기, 핸드드립 커피 내려마시기, 라디오 들으면서 방 정리 하기, 다이어트 댄스 영상 틀고 삘 받아서 춤추기 등 나는 엄청난 취미 부자였다! 앞으로는 해리포터 원서 읽기, 홈카페 도전하기, 방 인테리어 조금씩 바꾸기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고 싶은 취미를 찾더라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또 하나의 관문일 것이다. 5년쯤 전만 해도 무조건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는 등 면대면의 방법이 주류였다. 반면 요즘에는 어른들의 취미를 장려하는 플랫폼이 많아져서 집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고, 준비물까지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대표적 서비스로는 클래스 101, 탈잉이 있고, 유튜브에도 취미를 공유받을 수 있는 콘텐츠들이 아주 많다. 지금부터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에 내가 활용해본 방법과 취미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클래스 101에서 아이패드 드로잉 수업을 들었었다. 가격은 20만 원대 였던 걸로 기억한다. 금액이 꽤나 있지만 수강기간이 생각보다 짧아 결국 다 듣지 못한 채로 끝나버렸다. 이 시기에 클래스 101로 아이패드 드로잉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결국 배운 것은 Procreate 앱의 붓 설정 방법 정도였다. 아무래도 직접 옆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보니 강제성이 없고, 노트북 or 핸드폰으로 강의를 틀고 아이패드와 번갈아 봐 가며 하는 번거로움에서 비대면 강의의 한계점을 느꼈다. 다음에도 아이패드 드로잉을 배우려고 시도를 한다면 유료 온라인 강의보다는 유튜브를 활용할 것 같다. (우리나라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아이패드 드로잉을 다루는 영어권 유튜버들이 많다. 아무래도 한글자막을 제공하지 않는 콘텐츠도 많지만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므로 아이패드 드로잉을 시작하고 싶다면!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자.
직접 만들고 싶은 것이 생겨 원데이 클래스로 가죽공예를 시작했다. 처음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면서 평생 쓸 디자인 노트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노트 커버를 만들고 속지를 갈아 끼워 가며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무턱대고 공방에 찾아갔다. 가죽이라는 소재의 투박함과 쓸수록 길들여져 가는 멋에 매력을 느꼈지만, 21살이었던 내가 고정적으로 지출하기에는 큰 비용이었기 때문에 원데이 클래스에 그쳤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찾아간 원데이 클래스에서 다시금 가죽의 매력에 빠져 제대로 가죽공예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받을 때 망치질만큼 유쾌 통쾌한 게 없다.
하다 보니 가죽공예는 나의 3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취미활동이었다. 공방 식구들과 다과를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면서 손바느질을 하고, 가죽을 재단하고 망치질을 하며, 디자인 패턴을 만들며 혼자 고민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년 가까이 매주 공방에서 가죽을 다뤘고, 가죽공예를 시작하면서 취미활동을 아카이 빙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도 따로 만들었다. 나는 좋아하는 건 나눠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변의 많은 친구들을 가죽공예의 세계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가죽의 매력은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뤄보려고 한다.
2020년 1월, 우울감을 멈추기 위해 집 근처 요가원으로 향했다. 날이 추워지고 몸을 못 움직이면 기분의 변화도 따라오는 편이다. 오랫동안 치던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복싱, 수영, 헬스 등 다른 운동을 시작해보려고 했지만 모두 잘 맞지 않았다. 운동을 오랫동안 쉬면 기분도 덩달아 쳐지는 성향이기 때문에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그저 집 근처라는 이유만으로 요가를 시작하게 됐다. 겨울에는 거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정적인 운동은 나와 전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힐링되는 기분을 느꼈다. 지루할 줄만 알았던 명상도 조금 적응되니 혼자 있을 때도 할 정도로 좋아졌다. 이런 걸 ‘금사빠’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3달 가까이 요가를 쉬게 됐다. 그리고 시작된 온라인 줌 요가 강의. 요가원에서 줌 수업을 열어주셔서 자취방에 요가매트를 깔고 나 홀로 요가 수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줌으로 듣는 요가 수업은 낮은 화질과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책상 앞에 앉아서 줌을 하는 것과 별다른 장비 없이 요가를 하며 줌을 하는 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을 찾다가 유튜브에 목소리가 좋은 요가 선생님 위주로 따라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튜브 영상 중에서는 나와 꼭 맞는 수련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시퀀스가 빠르면 따라 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우리 집은 스마트티비가 아니라 아이패드나 노트북을 통해서 영상을 확인하며 자세를 따라 해야 하는데 처음 해보는 자세면 영상을 몇 번이나 되돌려봐야 해서 흐름이 끊김을 많이 느꼈다.
다음으로 시도해 본 온라인 요가는 어플을 이용하는 것이다. 주변에 요가를 오래 한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아 Downdog이란 어플을 이용해 보았다. 원래는 유료지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무료로 제공해준다. 이 어플에서는 나의 수준과 취향에 맞게 조건을 설정하면 그에 맞는 수련을 제공해준다. 수련 타입, 초중고급 단계, 부스트 부위, 사바아사나 시간, 설명의 정도, 음악 종류, 한 동작의 유지시간 등 옵션이 굉장히 많다. 또한 다양한 각도에서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에 처음 하는 동작도 따라 하기 쉬웠다.
Nike Training 어플에서도 요가를 해보았는데, 확실히 나이키만의 감성이 있었다. Downdog은 정적인 수련이었다면 Nike는 훨씬 액티브하고 young 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타깃의 연령이나 성향이 다르다고 느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고 난 뒤의 나는 거실에서 무드등과 인센스를 켜고, 가장 마음에 드는 요가복을 입고 튀어나오는 뱃살을 신경 안 쓸 수 있으니까! 나에게 맞게 설정한 Downdog으로 아쉬탕가, 혹은 유튜브로 스마트 티비를 결국 샀다. 한 동작을 오래 유지하기 때문에 따라 하기 쉬운 하타요가를 한다. 물론 선생님과 다른 수련자들과 함께 땀을 흘릴 수 있는 요가원에서 수련하는 것이 가장 좋았고 그립지만, 이제는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요가 루틴을 찾게 됐다. 다시 도란도란 모여 앉아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취미(趣味, 영어: hobby)는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이다.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써 일반적으로 여가에 즐길 수 있는 정기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취미생활에서 조차도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취미 생활은 나와 오롯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써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활동으로, 오롯이 그 즐거움을 만끽하면 된다. 모두가 본인만의 '놀이'를 가진 호비스트(hobbyist)가 되어 이 힘든 시기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취미생활의 비대면화는 계속될 것이다. 취미생활뿐 아니라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재택근무, 원격회의, 온라인 결혼식, 연말 송년회 등이 있다. 나조차도 대학의 온라인 강의나 비대면 요가 수업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한편, 다시 대면 강의를 실시했을 때 매 교시마다 다른 건물을 드나들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귀찮을 것 같다. 취미를 배우기 위해 한 시간 씩이나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는 게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은 불편한 현재에 적응을 해나간다. 2021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취미와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새해에는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이 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취미의 기준에 두 가지를 더 추가해봐야겠다.
대면으로 즐기고 싶은 것, 그리고 비대면으로 즐거울 수 있는 것.
THIS.는 Do Something Meaningful이라는 슬로건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 활동을 하는 디자인 커뮤니티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비핸스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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