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ISDOT Oct 08. 2020

익숙해진, 혹은 잊혔던 것들을 새롭게 보다

익숙함을 돌아보는 시간

많은 것들이 금방 생겨났다 금방 잊히는 세상이다. 행복했던 기억, 슬펐던 기억, 사소하게 스쳐갔던 모든 것들도 어느새 금방 잊히곤 한다.


동생이 넷플릭스에서 ‘응답하라 1994’를 보는 중인지, 최근 재생한 목록에 남아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응답하라에 푹 빠져서 지냈던 그때를 추억하며 정주행을 시작했다.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시리즈는 2012년을 1997을 시작으로 1994, 1988까지 연이은 히트를 쳤다.  스토리 구성도 재밌었지만, 우리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겼던 가장 큰 이유는 잊고 지내던 소중했던 시간을 다시금 선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과거의 스토리나 시대 배경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 사용하던 소품들도 대거 등장한다. 극 중에서 피아노 모양의 전화기가 등장한 장면이 있었는데, 어릴 적 우리 집에 있던 것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보자마자 반가움에 ‘어!! 저거 우리 집에 있던 건데?’ 어릴 때 피아노 대신 저 전화기를 가지고 놀던 과거의 내 모습이 스쳐가며 미소가 지어졌다. 20년 동안 단 한 번의 생각조차 나지 않았지만, 기억 저편에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었나 보다.


이처럼 우리는 익숙하고 당연했던 수많은 것들을 잊고 지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사용했던 물건들, 순간순간 느꼈던 애틋한 감정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지금도 나는 가족 외엔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전화번호 조차 외우지 못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초등학교 친구 녀석의 번호가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수첩을 보며 전화를 걸던 아날로그 시절의 기억이 몸에 새겨졌나 보다.

그 녀석 아직도 그 번호를 사용하고 있으려나...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진로소주의 인기가 폭증했고, 2019년 델몬트 사에서 이벤트로 출시한 추억 가득 델몬트 오렌지 주스병은 3,000세트가 이틀 만에 완판 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겐 오렌지 주스보다 물병으로 익숙한 그것이다. 잊고 지냈던 것들이 향수를 일으킴과 동시에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재미 삼아라도 우리는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함을 증명한다.


레트로란 그런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실을 뒤로한 채, 작은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과거에 익숙함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멀어지고, 스크린 속 세상이 익숙함이 되었다. 공연을 볼 때도 영상을 남기기에 바쁘고, 여행을 가서도 현장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보다 사진 찍기 바쁘다. 기억은 휘발되지만 사진은 영원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남겨진 사진을 되돌아봤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때문인지... 현실을 온전히 느끼기도 부족한 시간에 ‘딴짓’을 하고 있는 느낌이 언젠가부터 들기 시작했다. 진짜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지낸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연령대이자, 그 속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직업을 가진 나지만 가끔 이 녀석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길을 걸을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내 시선은 그 작은 스크린에 고정이라는 걸 문득 깨닫는다. 심지어 이어폰도 외부 소리를 완벽히 차단해주는 노이즈 캔슬링이다. 그야말로 오프라인과 ‘단절’된 생활이다.


출근길에 주위를 둘러보니 지하철 속,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작은 스크린만을 바라본다. 익숙하지만 이상하고 어색한 풍경이다.



나는 작은 스크린에서 벗어나, 이동하는 시간 만이라도 주위를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지낸 지 벌써 한 달 정도 지났다. 작은 스크린에서 벗어나, 이어폰도 벗어던지고 주변 환경에 좀 더 집중하려 노력했다. 이 한 달은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스크린 속 세상과 멀어지진 못했다. 그곳은 그곳대로 흥미로운 곳이니까.


가장 충격을 줬던 감각은 의외로 시각이 아닌 청각이었다. 소리가 더해진 일상은 매일 지나치던 똑같은 길도 다르게 보이게 했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참새가 많았던가... 아침에 상가 오픈을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의 수다 소리, 수증기 가득한 만두가게의 만두 빚는 소리, 과음 치며 물건 받는 채소가게 아저씨까지. 단지 소리라는 자극이 극대화되었을 뿐인데 모든 게 새로웠다.


상경한 지 3년이 된 이제야 서울도 ‘사람’ 다웠다.


매일 다니는 건대 골목이라 변한 게 없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코로나의 여파... 생각만 해봤지 실제 주위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사례를 접하기는 어려웠다. 아니 외면했던 것 같다. 이제야 정말 많은 가게들이 없어지고 새로 생겨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두 개가 아니라 거리가 거의 통째로 리뉴얼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가게들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즐겨가던 단골 술집도 사라졌다. 생각보다 많이 주변에 무심하게 지냈나 보다.




익숙함은 언젠가 당연시되고, 당연한 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멀어진다. 


시간이 지나, 다시 지난 시절의 익숙함을 우연히 직면할 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낯설게 다가온다. 잊고 지냈다고 해도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잊혔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쌓여 ‘나다움’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익숙함을 느끼는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새롭게 보지 않으면 그저 나에게도 익숙한 무엇일 뿐이다. UX 디자이너의 일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진다. 특정 대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관찰’로 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일상의 익숙함에 젖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놓치며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익숙함에 당연시되는 것들을 돌아보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THIS.는 Do Something Meaningful이라는 슬로건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 활동을 하는 디자인 커뮤니티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비핸스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유합니다.


https://www.behance.net/THIS_DESIGN


THIS. 는 단톡창에서 매일같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단톡 창 가입은 아래 링크로 신청해주세요.

http://www.thisdesign.io/this_jogger/


작가의 이전글 적당한 게으름은 황금알을 낳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