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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Oct 14. 2023

06. 그 나름의 이유

이혼도 결혼생활도 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

남의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그에 대한 가장 쉬운 반응은

"왜 그러고 살아? 네가 뭐가 아쉬워서? 이혼해버리고 말지"


말은 쉽다.

실제로 그 과정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정말 쉽게도 말을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이혼의 과정에서 남들의 쉬운 말들을 참 많이 들었다. (아.. 정정하겠다. 그들은 정성스러운 조언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참 쉬운 말들이었다.) 물론 꼭 이혼이라는 과정을 직접 겪지 않으면 남의 인생의 이슈에 조언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과정이 여러 복잡한 관계와 감정에 얽혀있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삶의 숙제들과 더욱더 밀접한데 각자 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조언으로 뭔가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성격이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어린시절에 나는 힐러리가 클린턴과 이혼하지 않는 이유를 그녀의 정치야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바람을 피워온 남자, 대통령이었던 그의 위치 때문에 그의 모든 바람은 전 세계로 브로드캐스팅되는 굴욕까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자 그녀 스스로만 보더라도 너무나 잘난 여자 힐러리. 출세 뒷바라지를 해줬더니 각종 바람으로 와이프에게 빅엿을 날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데 그리도 잘난 여자 힐러리는 아직도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문득 그들이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현실적인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쩜 힐러리는 클린턴을 계속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의 바람기도 어쩌면 그의 일부라도 생각했을 수도 있고(포레스트 검프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상자에 담긴 초콜릿들과 같아서 무슨 맛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사람의 됨됨이를 이 초콜릿 상자에 비하면 이런저런 면들이 동시에 있어서 그 상자 안에는 맛있는 초콜렛도 있지만 별로인 초콜렛이 있으니 맛없는 부분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아무리 잘나 보이는 힐러리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을 수도, 이혼이 귀찮아서였을 수도, 정말 정치 야심 때문이었을 수도... 추정은 할 수 있지만 정말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나도 모르고 어쩌면 당사자도 정확히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99% 당장 버리고 싶은 남편이지만 1%는 의리, 사랑 등이 있어서 일 수도 있겠다. 훗날 그녀가 자서전을 통해 정말 내가 궁금했던 이유를 밝혔다. 


"부부라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 유지해야 할지가 불확실한 때가 있었다. 그런 날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 즉,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가? 또 분노, 분개, 냉담에 휘말리지 않고 원래의 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늘 긍정이었다."

출처: 로이터


힘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도, 이혼을 하는 이유도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누군가에게 납득시킬 필요도 없다. 100쌍의 커플에 물어보면 결혼을 지속하는 이유, 이혼하는 이유에는 200개 이상의 답이 있을 것이다. 정답도 없다. 합리적으로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이유라 하더라도, 그 자신에게 중요한 이유라면 그게 그 행동의 이유인 것이다. 잘 나고 잘난 힐러리가 뭐가 부족해서 세기의 바람둥이와 이혼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혼이라는 결정을 한 한 부부, 두 사람에게도 '이혼'이라는 결정은 같지만 이혼을 한 이유는 다를 수 있다. 나도 내가 정확히 이혼을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지난 5-6년을 곱씹어보았다. 큰 틀에서는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던 사람이 각자의 진화의 방향, 방식 및 속도가 달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지만 세세한 이유를 보면 다 다르다. 그러나 결론은 '나답게 살고 싶다'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하는 부분이 있고, 지속적으로 발전해가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옆에 있는 동반자와 함께 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결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결론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것이 이혼하지 않는 이유,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혼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삶의 이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하지 않는 이유도 다 있다. 내 이혼은 결국 내 결정이다. 조언인지 간섭인지 알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의 쉬운 말, 각종 인터넷에 도배가 되어 있는 이혼변호사, 심리상담사의 이럴 때는 이혼하십시오류의 광고글은 내 의사를 분명히 하는 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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