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싱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no Oct 12. 2023

05. 아이

나의 너무나 아프고 아픈 부분. 그러나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

가끔 내가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과 실행이 쉽지 않았지만 그 시점에서 이혼은 최선의 선택이었고 해야만 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길은 늘 궁금하다. 나의 이혼여정을 돌이켜보며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 궁금해하긴 하다. 그리고 그 길이 궁금한 이유는'아이'를 바라볼 때이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 혼삶을 살게 되었고, 지금은 아이가 열 살이 되었으니 열 살 인생을 살아온 아이의 반을 나는 주말 엄마로 살았다. 그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아이 나름의 사회생활과 성장을 해가고 있다. 다시 싱글로 사는 나 하나만 본다면 큰 이슈가 없다. 간혹 가다 드는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 생각, 고정된 세그먼트에 대한 불만, 다시 싱글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지만 내가 어떤 세그먼트에 속한 들 인생을 살아간들 그 정도의 어려움이 없을까? 나는 다시 싱글이 된 나의 새 아이덴티티를 굳이 숨기지도 않고 가끔은 그걸로 팀원들에게 농담을 하기도 할 정도로 익숙하다. 가끔 일터에서 큰 소리를 내야 할 경우가 있는데 한번 언성을 높이고 나서 아마 "성질 더럽네. 저러니까 이혼했지?" 뭐 이런 식을 뼈 있는 농담(?)도 나를 향해 던질 것도 잘 안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대단히 아픈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만 생각하면 다시 싱글이 된 혼삶에서 나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혼삶에서 아이를 생각하면, 특히 한국사회에서 전형적인 유교걸의 패턴을 살아온 내게 이혼한 엄마로서 아이에게 느끼는 아프고 아린 감정은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심리학적으로 아이의 나이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든 그것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너무 어려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을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 아빠와 한집에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곁에는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에 런던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직급을 낮추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으로 내가 희생했다고 볼 수 없다. 그 나이의 아이에게 특히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주변을 돌아보면 부모의 이혼에 여파를 바로 받는 아이가 있고, 그럭저럭 잘 적응한 것 같다고 후유증이 나중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아이에게는 바로 여파가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늘 불안하다 지금 괜찮아 보이는 저 아이의 마음속에 어떠한 상처가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혼 후 몇 년을 심한 죄책감에 아이를 만나는 주말에는 온몸을 던져 오버하여 내가 못 해주는 시간을 주말에 다 보상하리라 싶은 마음으로 엄청난 무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월요일에 몸살이 나기도)


그렇게 5-6년을 죄인의 마음올 살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이에게 무한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걸까? 그 마음 때문에 단호하게 대해야 할 때에도 주말에만 만나는 아이에게 큰 소리를 못 해서 아이에게 뭔가를 지적해 주는 기회를 잃은 적도 많았다. 그럼 부부의 이슈를 그저 눌러두기만 하고 이혼을 하지 않고 살얼음판 같은 가정에서 셋이 꾸역꾸역 사는 게 나은 방법이었나? 그것도 아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 상처가 있겠지만 내가 지속적으로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답이 아닌 듯했다. 그 이후 나는 나의 마인드셋을 조금 바꾸었다. 미안한 일은 미안한 것,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는 법.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결정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일단 내가 정확히 인지해야 언젠가 아이가 "엄마, 아빠는 왜 이혼했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라는 질문을 혹시라도 한다면 가장 정직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만으로 도배된 마음으로는 내가 잘하고 있는 것들, 지금의 생활이 가져다주는 나름의 장점을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나는 다짐한다 매일

- 나와 아이는 우리의 삶에 맞는 자리에 정착하는 중이다.

- 나는 아이의 엄마이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나는 아이의 롤모델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내 인생은 철저히 나의 편이며 지금 내가 아쉬워하는 내게 오지 않은 기회들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것을 믿는다.


많은 이들이 이혼에 있어 아이를 '걸림돌'로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이는 이혼의 일시적인 걸림돌일 수는 있어도, 영원한 부모의 삶의 동력이다. 내가 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내게 오지 않았을 것이고, 비록 그 결혼이 이별로 끝나서 남편은 더 이상 남편은 아니지만 아이는 영원히 나의 아이이다. 아이의 의미는 이혼 후 더욱더 내게 각별해졌다. 누군가 아직도 혹시나 내 아이를 이혼녀의 딸이라 폄하한다면 내가 누군지 보여줄 수 있게 나는 늘 굳건히 존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누가 이부진을 '이혼녀'라 하는가? 이부진은 그냥 이부진이듯이 그녀의 아들은 그냥 이부진의 아들이다. 내 딸에게도 아직도 누군가 낚은 편견으로 내 아이를 속상하게 한다면 "내가 얘 엄마야. 나 누군지 알지?" 납작 눌러줄 수 있게 잘 살아있자 싶은 마음이 늘 내게 있다. 아이.. 내게 가장 아픈 부분. 그러나 나를 나아가게 하는힘.

매거진의 이전글 04. 롤모델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