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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Feb 11. 2020

나이는 권력이 아님을, 아무것도 아님을..

나이가 진정 숫자에 불과하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의미를 전달할 때 인용된다. 맞는 말이고, 나이가 많아졌다고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내가 '요즘 나이 마흔'을 시작할 때 여러 번 언급했듯이 불혹, 중년으로 표현하기에는 평균수명의 증가와 사회/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뭔가를 못 하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는 그저 살아온 해들을 합친 숫자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정말 숫자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방식은 모든 생활상에 반영되어야 한다. 특히 나이를 권력으로 생각하거나, 대접받아야 할 권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상하게 마흔 즈음부터는 말이 짧아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여기에 목소리 톤도 변한다. (나이로) 숫자가 적은 후배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로 나이가 숫자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이는 그저 살아온 해 들을 합한 숫자일 뿐이지, 나이를 먹었다고 더 훌륭한 삶의 경험을 가졌다고 객관화할 수도 없고, 그 숫자가 적은 이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는 위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이를 먹어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노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반드시 노련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해의 숫자들과 상관없이 후배들로부터 배울 것도 많고, 더 적게 살았지만 더욱 지혜롭고 노련한 이들도 많다.


여기까지 동감했다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말'인 것 같다. 한국어는 존대와 반말이 있다. 호칭도 나이에 따라 형님, 동생으로 나눠 썼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이 나이 어린 이들에게 반말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다 하나의 인간, 그저 인격체로서 동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나이 좀 들었다고 (이게 자랑이 아닙니다) 반말을 할 권리를 가진 게 아님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가 어린 측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애교인지, 어리광인지 몰라도 동년배에게든, 선배에게든, 누구에게든 몇 문장 간격으로 말을 짧게 하는 경우들을 본다. 어리광은 애인에게나 부모님께 부려야지 사회에서 만난 이에게 부릴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요즘 이름 뒤에 '님'을 붙여서 부르는 새로운 문화가 나는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문영님' '승환님'  나이와 상관없이 객관적이고 존중을 담은 민주적인 호칭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호칭의 민주화부터 이뤄야 서로의 아이디어가 오가고 평등한 관계에서 진정한 관계가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흔 즈음부터 말이 짧아지는 현상을 자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어느 정도 객관적인 관찰은 마흔 즈음에는 조직에서 리더의 포지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상하관계가 생기면서 이를 남용하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는 리딩을 하는 것이지 권력을 부리는 자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의 하달 과정, 이전의 조직 인습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나이에 권력을 더하여 말이 짧아지기도 한다. 또 하나, 마흔 즈음부터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말을 완성형 문장으로 끝 마침 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러니 짧게 말하기 시작하는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이는 권력이 아니다. 나이 들었다고 반말을 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먼저 반말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고 그저 그 사람은 꼰대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도 내 후배들에게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지 않는 한 말투에서부터 평등한 관계를 이루려 한다. 간혹 동년배라는 이후로 선배라는 이유로 내게 짧은 말로 다가오는 이들에게는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말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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