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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Jun 22. 2020

마흔, 가시나무

내 안에 있는 많은 나를 데리고 사는 법

요즘은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내가 맘에 들어간다. 대단한 변화나 성취가 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잦았다. 나이를 먹으니 당연히 따라오는 노화로 오히려 반대의 마음이 들만도 한데 저편 거울에서 발견한 내 모습도 그럭저럭 괜찮다. 아마 더 이상 나와 싸우지 않기 때문일까??


어린 날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 에너지로 나를 들볶았다. 미성숙한 자아가 성찰 또는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인 성공부터 오늘 하루 입는 옷과 몸무게까지... 채찍도 적당히 효과적으로 휘둘러야 하는 것을 그로 인해 얻은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명백한 것은 채찍을 휘두르느라 쓴 에너지가 얻은 것보다 넘쳤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성공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도, 내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는 상태에서 무조건 “더더더!!!”


이젠 힘이 떨어져 간다. 그런데 다행이다.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에 비해 오히려 가성비가 좋다. 적게 쓰는데 아웃풋은 더 나온다. 힘이 자주 떨어지니 전보다 자주 충전한다. 멍하니 앉아 초콜릿을 씹어먹기도 하고, 쑤시는 관절을 문지르며 ‘가만있자... 이게 맞나??’ 생각도 한다. 에너지가 넘쳐나지 않으니 내가 힘쓸 영역이 아니면 아예 신경을 끊다. 어쭙잖은 조언을 할 생각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뭔가에 끊임없이 불만을 내뿜는 사람들의 소음도 다~~~반사!!! 그 얘기 내가 들어준들, 어쭙잖은 조언(?)을 한들 그게 먹힐까??? (이런 류의 사람들은 어디서든 그저 푸념할 대상을 찾는 자존감 부족한 류라 스스로 떠나게 만들어야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에너지 효율은 높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스스로와 아주 사이좋게 지낸다

버럭버럭 화만 내던 내 안의 잔소리꾼도

무조건 부족하다던 내 안의 모지리도 잠잠하다

그냥 또 다른 내 안의 동지가 나를 봐준다

요즘은 내가 나랑 안 싸우고 지낸다

이 정도가 되면 나는 역치에 이를 것이니 봐주자 싶은

내 안의 무엇인가가 나를 살살 다뤄주는 느낌

무슨 가시나무 같기도

다중이 같기도 하지만

나, 요즘 나랑은 조금 화해한 기분이다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

아주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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