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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Mar 01. 2021

남을 보듯 나를 바라본다

이제 돌이켜보니..

이제와 서야 돌이켜보니 나는 참 예민한 면이 많았다.

태어날 때부터 커다랗고 잘 울지도 않아서 나는 한 살 터울의 언니에 비해 무던해서 키우기 수월했었다는 엄마의 말씀과 달리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잔병치레가 잤고 큰 키와 목소리에 비해 부실했던지 난데없이 어디선가 푹 쓰러지는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다. 그냥 기가 허한 정도??) 일도 있었고, 버스를 타면 꼭 멀미를 해서 엄마가 가방에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야 했었던 모습이다. 사춘기에는 같은 환경에서 자란 언니에 비해 가정 대소사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훨씬 많이 받아 어린 마음에 다 표현하지 못 한 괴로움을 몸과 마음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생리를 시작해서는 어찌나 생리통도 요란하게 겪었는지 한 달에 한 번은 쓰러질 듯 아파 조퇴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금 와서야 보이는 나의 참으로 예민한 증상들로 (너무나 명백한데) 나 스스로가 예민하다고 생각해온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게 어쩜 문제였던 것 같다. 타인도, 나 스스로도 나는 무던한 사람, 어디서든 잘 적응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지나친 자기 효능감으로 살아온 시간이 43년째. 스스로 너무 이미지 포장을 잘했었던 것일까 그런 와중에 이런저런 삶의 이슈들이 생기며 다시 그 고통을 몸과 마음이 아프게 겪어낼 때 어쩜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그러려니 나를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나는 나처럼 강하고 무던한 인간이 왜 이런 걸로 난리냐며 오히려 나의 적이 되었던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홀로 남겨졌을 때에도 나는 나를 위로하여 다독이기보다 씩씩한 내가 왜 이러니 식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 같다. 어쩜 멀쩡한 사람에게도 쉽지 않았던 시간에 나는 내 상처에 스스로 소금을 뿌리며 아프고 아파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나를 보니 나는 참 예민한 기질의 사람이다. 나를 남을 보듯 바라보니 어쩜 그렇게 매 순간을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아픔을 견디어내 온 너무나 예민한 사람. 불면의 밤을 보내며 내일 출근을 하려면 피곤할 텐데 왜 잠을 못 자니 할 것이 아니라, 또 무언가를 아프게 겪어내고 있는 나를 그저 나라도 조용히 다독이며 나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에 좀 더 아프게 겪어낸다는 것을... 그럼에도 좋은 점은 좋은 것도 그렇게 몸과 마음으로 기억해내며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한 지인은 이런 나의 기질을 '명민함'이라고 해석해주기도 했다) 감정을 오래 기억하고, 자주 곱씹기 때문에 좋은 기억은 다양한 의미로 오래 간직한다. 


예민하기 때문에 살아낼 수 있기도 했다. 많은 것들을 내려놔야 했던 날,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삶이 한순간에 이전의 삶과 비할 수 없이 바뀌고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날에도 아프게 그리고 아프게 일어섰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명치가 답답하여 찾은 병원에서 홧병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심장을 움켜쥐며 아픈 소식들이 세포 하나하나를 짓누를 때에도 그렇게 아프게 살아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참...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참 괜찮은 사람이기도 했다. 늘 부족하다 아쉬워하던 나는 돌아보면, 나를 남처럼 보면 나는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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