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도 어느새 꼰대 나이.
결혼은 왜 안 하냐, 아이는 왜 안 낳냐 함부로 라떼를 외쳤다가는 꼰대인증하는 셈이라 평소에는 전혀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싱글이 된 내게 누군가 진지하게 묻는다면 나는 결혼을 추천한다.
일단 한국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의 비합리성을 열거하자면 2박 3일 워크샵을 해도 부족하다. 차라리 결혼 말고 동거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유럽처럼 동거제도를 왜 못 할까 생각해 보면 한국사회는 두 사람이 중심이 되는 '라이프파트너'로서의 커미트먼트보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확장된 많은 사람들 (가족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법적 부부'로서의 사회적 커미트먼트까지 내외면적으로 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아마 언젠가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한국도 프랑스처럼 동거인에 대한 법적지위가 인정되고, 오랫동안 동거하는 커플에 대한인정이 이루어질 것도 같지만 문화적인 요소가 깊은지라 그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것 같다.
결혼의 많은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온전히 독립하는 (물리적, 정신적, 경제적) 계기를 한국사회에서는 '결혼'이 출발점으로 본다. 물론 결혼한다고 당장, 냉큼, Right now 인간이 온전히 독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18세가 되면 집을 떠나 독립을 시작하는 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그 출발점이 '결혼'이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혼이란 걸 해본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이게 드라마나 예능에서 보는 것처럼 늘 해피해피하지만은 않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조율하고 타협하고 함께 살아보는 경험은 나중에 그 결론이 이혼이 되었든 아니듯 상관없이 인간을 여러 면에서 성숙하게 만든다. 실제로 결혼을 해야 돈의 소중함도 알고, 세상 무서운 줄도 알고, 집에서 매일 얻어먹던 밥도 다 공짜가 아니었음을 안다. 한마디로 조금 더 빨리 철이 든다. (물론 예외는 있다. 결혼해도 철 안 드는 사람도 많기는 하다.)
그럼 그렇게 결혼하여 철들고 조율하고 살았는데 간혹 그 결혼이 '이혼'으로 끝났다면 결혼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또는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거나, 내 눈이 삐꾸였다던가 싶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결혼을 선택한 시절에는 그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 성장한다. 조금씩 진화한다. 그리고 부부도 같이는 살지만 그 각자의 인생 진화과정을 조금씩 거치고 있다. 다행히 두 사람의 진화의 방향이 같다면 그 부부는 계속 합의점을 찾아 살겠지만, 둘 중의 진화의 방향이 다르거나, 비록 그 방향이 같다 하더라도 ‘속도’에 급격히 차이가 있다면 현재의 시점에서는 어떠한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진화한 지금의 시점에서 '결혼'을 결정한 그 시점에 빗대어 내 결정이 틀렸어, 내 눈이 삐꾸였어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때는 그로서의 최선의 선택이 결혼이었고, 시간이 지나 각자 다르게 진화한 두 사람이 내린 '이혼'이라는 결정도 최선인 것이다.
그래서는 나의 나의 '결혼'도 '이혼'도 모두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당시의 최선의 사람과 내린 그 시점 최고의 결정이었고, 이혼은 그 시점에서 각가 달리 진화한 두 사람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결혼도, 이혼도 모두 나다운 최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