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티오피아항공과 아디스아바바 공항)
21년 가을,
텅텅 비어버린 공항.
20여년간 이런 공항을 처음 봤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한 없었다.
평소 좀비가 출몰해 세상이 멈추는 공포 영화를 즐겨봤었는데, 이젠 조금도 재밌지 않다.
낯선 적막, 지나치게 깨끗하고 사람의 온기가 없이 냉랭하게 반짝이는 큰 공간.
내게 와닿는 가장 현실적인 공포였다.
며칠전 인천 공항에서, 발 디딜 틈없이 복잡한 카운터를 지나 여기저기 치이고 부딪히면서
하하하 미친사람처럼 웃었다. 기다리는 것이 화나지 않고, 부딪히는 어깨가 반가웠다.
21년 가을의 서늘하고 텅 빈 공항은 아주 오래 내 기억에 남아
앞으로 다가오는 여행에서 대부분의 짜증을 잠재울 듯 하다.
여행에서 기대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기내식이라는 손님도 계셨었는데, 에티오피아 항공은 기내식을 기대하면 안된다.
에티오피아 항공 탑승을 앞두고 있을 때는 라운지나 식당가에서 든든하게 먹고 오는편이다.
그래도 코로나 이전에는 좀 신경써주는 느낌이었는데..
그래. 인력도 부족하고 모두 힘든데 운항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다소 시크한 승무원, 때로 아프리카식 업무처리, 잊을만하면 사람 놀래키는 변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로 향할 때 에티오피아 항공을 늘 이용하는 이유는
가장 좋은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의 쇼'
대한항공이 야심차게 아프리카 직항노선을 시작하던 10년전,
TV 광고에서 어흥 울어대던 사자를 보고 벅차하며 우리의 세상이 왔다며 좋아했었으나
그 야심작은 2014년 발병한 서아프리카의 에볼라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한항공 내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전부터 없애고 싶던 적자노선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아프리카로 가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은 에티오피아 항공이다.
일단, 에티오피아 항공의 놀라운 성장이 그 배경에 있다.
2015년만 해도 총 보유 항공기 수가 77대에 불과하던 에티오피아 항공은, 22년 현재는 135기까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며 명실공히 아프리카 최대 항공사로 자리잡았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공항의 연간 여객수용능력도 3년전 6백만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2천 2백만명으로 증가했다. (자료출처, 에티오피아 항공)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볼레 공항은 최악의 공항으로 악명이 높았었다. 붐비는 걸 넘어선 지옥의 아수라장. 크지도 않은 공항에 보안검색대를 두 번이나 설치해서 제 시간에 게이트에 가려면 일단 공항 직원을 붙잡고 내가 얼마나 다급한지를 알려야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여차저차 제 시간에 항공 연결편을 탄다는 것이다. 환승을 해야하는데 내가 탄 비행기가 공항에 늦게 도착했다면, 비행기에서 바로 다음 비행기로 태워주는 특급 서비스도 제공하고('설마 버리고 가겠어?' 이번에도 태워주리라는 걸 기대하는 마음과
'표정보면 버리고 갈 것 같은데?' 하고 애타는 마음 사이에서 늘 혼란스러웠었다.)
숨도 쉬기 힘들정도로 빽빽하게 줄서있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급한 연결편을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쏙쏙 뽑아가는 신기함도 갖추었었다.
2018년 시사인과 함께 진행한 아프리카 여행팀에서, 손님 중 한 분이 생전 처음 겪으셨을 혼잡함과 아디스아바바의 높은 고도등 여러 요인으로 공황장애와 비슷한 상황이 와 공항에서 기절을 하셨었다.
다행히 손님 중 건장한 119 구급요원이 계셔서 쓰러진 손님을 업고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질주하셨나니,
그 모습은 마치, 조조의 백만대군 사이를 비호처럼 누비던 장판파 전투의 조자룡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결말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결혼이다. 될 사람은 이렇게도 된다. 마법처럼 아프리카가 맺어준 인연, 지금 이걸 쓰는 와중에도 예쁜 두 사람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아! 교장 선생님은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인생의 스토리가 가득 쌓이고, 그 중 들려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가다보니 이야기의 시작점과 끝점이 초등학생이 듣기에도 생경했던 것이었다.
에티오피아 항공 노선의 효율성 이야기를 하다가 선남선녀 결혼까지 왔다.
자, 아쉽지만 더이상 그런 로맨스는 없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엄청나게 변화했다.
그동안 계속 공사중이었는데, 드디어 화려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아프리카 허브 공항으로 새로 태어났다.
에티오피아 항공은 현재 유일한 인천- 아프리카 직항노선이다.
12시간이면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앞서 말했듯, 현재 아프리카 각 나라로 향하는 가장 많은 노선을 갖고 있고
이동 거리와 시간에 비해 가격도 나쁘지 않다. 또한 새벽 출발이라, 자고 일어나면 아프리카의 아침에 도착해서 시차에 대한 큰 불편없이 여행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비즈니스는 타 항공사에 비해 가격이 높은편인데, 빈 좌석이 거의 없다.
아프리카의 다양한 국가를 취항하고 있어, 7~8개국을 여행하는 아프리카 일주 여행에선 늘 에티오피아 항공을 베이스로 쓴다.
몇 번 자고 깸을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그리던 아프리카다.
양양에 머물 땐 서울의 일이,
아프리카에 있을 땐 한국에서의 무거움들이.
가뿐하고 사소하며 물렁인다.
아디스 아바바 상공에서 보이는 험준한 산맥의 그림자,
반짝이는 격자의 밭,
분화구 위 활짝 핀 팝콘처럼 동동 떠있는 구름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가벼이 웃음이 난다.
망각은 나의 힘.
지나보니 힘은 선택이고, 선택은 해결을 뜻했다.
부드럽게 내려앉은 아프리카의 땅이 또 한 번 일러준다.
이번에도 잘 부탁해 !
+ 아프리카가 맺어준 아름다운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