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가지려는 자, 빌런의 도발을 견뎌라.
" 아악!! 이게 뭐야 !!"
몇 년 전 엄마가 시골에 사놓은 땅의 길목을 들어서는데, 땅에 사람이 누워있었다. 하마터면 사람을 칠 뻔 했다. 급정거를 한 후 핸들 잡은 손을 벌벌 떨고 있는데, 한 사람이 태연하게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가 뭐랬소? 조심하랬지?"
목숨걸고 땅에 누워 자해공갈을 하던 사람의 정체는 옆 땅 주인이었다. 우리가 길목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냅다 땅에 드러누웠나보다. 엄마가 산 땅 쪽으로 죽은 고양이를 던져놓은 사람도, 각종 음식물 쓰레기를 투기하여 벌레를 들끓게 하던 사람도, 툭하면 길목을 경운기로 막아놓던 사람도 저 사람이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도시에서 사람이 와서 깔짝거리는 것이 보기 불편하다나? 자기들은 생업으로 이 곳에서 살아가는데, 주말마다 와서 꽃이며 나무를 심고 대추나무 살구나무 심어 수확철 마다 따가는 것이 눈꼴 시려웠던 모양이다.
먹을 것 한다발 사다가 인사를 드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자잘한 부탁을 안 들어 준 적도 없다. 20kg 짜리 비료 포대 여러개를 마당 안까지 옮겨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사람좋은 아빠는 흔쾌히 들어주었고(우리아빠도 70 다 된 노인이야 이 사람아), 땅에 심어놓은 반송을 캐가면 안되냐는 헛소리에 그 비싼 조경용 반송도 직접 떠서 그냥 나눠주었더랬다. 사람 좋게 굴면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고, 까칠하게 굴면 더 못됐게 구는 이 시골 사람들 같으니! 이래놓고 맨날 지방 인구가 소멸된다 어쩐다 난리다.
엄마는 그 무렵부터 태도를 바꾸었다. 눈눈이이 함무라비 식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따질 것이 있으면 따지고, 손해보는 것이 있으면 거절했다. 모든 일은 이장님과 상의했으며, 친분이 있던 농협 조합장에게 입김을 넣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냐고? 그렇게 앙칼지게 굴던 옆집이 온순해진 것은 물론, 더이상 부당하게 찝적거리지도 않게 되었다. 내가 봐온 시골의 생리는 이러했다. 아니, 시골에 국한되기 보다는 땅을 가진 사람들은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속터지고 섬짓한 일을 겪게 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왜 이렇게 다들 예의가 없니?
팽팽 놀고 있고 비어있는 땅이어도, 남이 밟고 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는게 시골에 땅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남의 땅은 하잘것 없어도 내 자갈밭은 너무나 소중하다.
나는 이웃과 최소 몇 백미터는 떨어진 막장땅(길의 끝에 있는 땅)을 찾았고, 그러다보니 현지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땅을 샀다. 얼마전 말벌 때문에 출동한 소방대원들도 말벌 보다는 땅을 얼마주고 샀는지, 뭐하러 이런 구석까지 들어왔는지를 더 궁금해 했으니 아마 시골 사람들에게 우리 땅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땅은 쓰잘데기 없는 땅으로 여겨졌을거다. 땅을 사자마자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땅값에 대해 예의없이 물었고, 우리가 여기에 자주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도둑놈들도 생겨났다. 땅을 사자마자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은, 젊은 데 나와서 동네 청소나 도우라는 말과 착하게 굴라는 말이었다. 하! 혈혈단신으로 이 구석까지 들어와서 땅을 산 거보면 내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겠니?
아니 진짜 돌까지 훔쳐가니?
공사를 하는 중에 장비를 몇 개 잃어버렸다. 그 당시엔 이 시골 구석에 누가 오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충전 장비들 몇 개가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 도둑놈들이 있구나!'
그리고 CCTV를 달고, 요란하게 알람을 울려댔더니 한동안 너구리 고라니 족제비 꿩등만 CCTV에 출연했다. 마음을 놓고 있던 어느날, 알람이 시끄럽게 휴대폰에 울려대길래 슬쩍 들여다봤더니.
어휴. 진짜. 이런 것까지 입을 대야하나.
우리가 70만원인가 들여 옆동네에서 받아놓은 강돌을 훔쳐가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번에 나누어. 참 정성이 대단했다. 이장님께 문자를 보냈고,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 그냥 다시 갖다놓으면 된다고 했다. 이장님은 처음에 '우리 동네 사람이 그랬을라고?' 라는 식으로 나왔지만, CCTV 화면과 영상을 보내면서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본인이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30분 후에 돌을 한가득 실은 경운기가 들어와 다시 돌을 내려놓고 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건 또 뭐야.
우리가 몇백을 들여 심어놓은 1년생 라임라이트 수국과 사철나무, 장미를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짓밟고 가는 저 못된 심보는 뭐야?! 3일에 걸쳐 매일 지근지근 일부러 차를 크게 돌려서 나가더라. 이쪽에서 농사짓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 미친놈 다 보겠네.
또 이장님을 볶았다. 이번엔 차량 번호까지 있으니 빼박이다. 경찰에 신고하려고 한다. 라고 했더니 잘 이야기하겠다.라는 답이 왔다.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우리를 건드려보기로 한건가?라는 억하심정이 들만큼 열받았다.
이 곳은 무법지대 !
나는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물론 법원과 경찰, 검찰등에서 연락이 올 때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당시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만 내겐 제대로 된 결과가 더 중요하다. 회사를 다닐 땐 상사의 반복되는 성희롱을 참지 않고 끈질긴 싸움 끝에 해고시키고 그 후 3년에 걸쳐 해고무효소송에 연루되어 증인 출석등으로 시달렸다. 그러나 그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던 다른 여직원들의 고충도 해결할 수 있었기에 그 지옥같은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회사를 나왔지만, 내 사례는 아직도 사내 성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 고리타분한 회사에서 꽤 충격적인 일이었을거다. 그들에겐 사내에서 성희롱이 일어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농담으로 안받아들이고 신고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퇴사할때 부장님이 나더러 그랬다 "난 너 같은애 처음 봐 정말 " 나도 맞받아쳤다."ㅎ 저도 부장님같은 사람 처음봐요." 벼엉신. 맨날 업무시간에 나가서 귀에 당구장 초크나 묻혀오는 주제에.
아무튼 그 외 다양한 사건들에서 나는 법으로 끈질기게 이겨왔다. 이럴바엔 로스쿨을 가는 게 더 낫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문제가 생기면 뭐든 법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피곤한 타입이었다.
그런데 법도 상식도 뭐도 잘 안통하는 시골에 왔으니, 그 스트레스는 오죽했겠나. 시골은 법의 영역에서 한 없이 헐렁한 듯 보이지만, 따지고 들면 법으로 득볼 것도 딱히 없다는 게 절망적이었다.
토지 관련 부동산 수업을 많이 들었다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전 그 수업에서 뭘 배웠다기 보다는 아 그냥 해결하지 뭐! 라는 토지주의 마음을 배웠어요. 문제없는 땅은 없는데, 그냥 그 문제를 해결하지 뭐.라는 담대한 마음을 갖는 게 핵심이예요" 라고. 근데 그냥 법 밖에서 해결해야한다고. 좋게좋게. 좋은게 좋은거다. 라는 흐리멍텅한 말이 가장 답이고 법인 이 곳.
문제없는 땅은 없다
문제 없는 땅은 없다는 게 핵심이었다. 우리가 심어놓은 측백 나무 30그루를 베어놓고, 포크레인까지 끌고 들어와 우리 땅을 밟고 지나가려는 미친놈들은 도리어 우리에게 물었다 "내가 왜 못지나가는데?"
또는 술처먹고 차를 끌고와서 우리 땅에 심어놓은 식물들을 밟는 놈에게 차를 여기에 대지 말아달라고 했더니 "내가 왜 여기에 차를 대면 안되는데? 이장 불러!" 라고 되려 큰소리를 치던 놈까지.
나는 이장대신 무조건 경찰을 불렀다. 이 동네의 미친년은 나야. 나 건드리지마. 가 목표였다. 측백나무를 베어버린 놈은 검찰까지 끌고 가서 벌금을 먹였다. 말싸움을 하면서 담배 꽁초를 퉤퉤 뱉어대던 놈은 담배꽁초를 수거하고 CCTV자료를 넘겨 벌금을 먹였다. 그들은 경찰 앞에서는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다시는 안그럴 것처럼 싹싹 빌었지만, 내 앞에선 여전히 큰소리를 빵빵 쳤다.
그리하여 이제는 법도 벗어났다. 우리 땅에서 회차를 하고 식물을 훼손하는 놈들 때문에 포크레인으로 길을 막았다.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곳은 견인이 불가하므로. 경찰이나 군청 사람만 오면 사람좋은 척 하는 이 동네 사람들을 따라, 나도 같이 이죽거렸다. 이렇게 정신줄 놓고 싸우다 보니 깨달은게 있다.
"아, 나만 스트레스 안받으면 되는구나"
문제는 계속 발생할거고, 빌런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 스토리는 이렇게 짜여져있다. '탐정'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당연히 이야기 속에서 사건이 계속 발생하듯이. '땅'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당연히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해결이란 없다. 그냥 흐리멍텅한 상태로 계속 흘러가야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흐리멍텅하게 웃기도 하겠지. 누구보다 약삭빠른 것도 시골 사람들이다. 자기한테 유리할 일이 없다고 판단되면, 포크레인을 빌리러 온 논농사짓는 아저씨처럼 우리에게 웃음을 내어줄 것이다.
시작부터 이 모양이니 그 모양이지 !
귀촌을 하게 되면, 나라에서 이것저것 교육을 시켜준다. 거기엔 트랙터 사용법 이수같이 꽤 유익한 것도 있고 '귀촌인의 마음자세'같은 정신나간 커리큘럼도 있다. 하루종일 사람을 불러놓고 다섯명 정도의 강사가 와서 하고 싶은 말을 하다 간다. 대부분 일찍이 귀촌하여 그 지역에서 한 자리 맡은 사람들이다.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여러분이 시골에 맞추세요."
좀 비상식적이고 드러워도 예~ 어르신하고 일도 열심히하고, 싹싹하게 굴고, 너 일 내 일 따지지 말고 열심히 돕다보면 사람들이 감복하여 너한테 잘해줄거라는게 이 수업들의 요지다.
시작부터 이모양이니 시골이 그모양인거다. 이방인이 새로운 곳에 가서 처음부터 악랄하게 구는 경우를 한 단어로 뭐라고 하지? 특별한 단어가 없다. 그렇다면, 토착민이 새로 들어온 이방인을 괴롭히는 걸 뭐라고 하지? 텃세다. 너무도 분명하게 한 단어로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 누가봐도 압도적으로 토착민이 이방인을 괴롭힐 확률이 높다. 나도 말로만 들었지, 당하고 보니 여기에 집을 지어도 될까? 라는 고민을 계속 하게 만들었다. 날을 세우고 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런 긴장감이 쌓이면, 내가 원하는 안온한 집 따위 단지 건축의 문제가 아닌게 된다. 시골 살고 싶어 온 사람, 너희 지자체에 세금 내고 살아갈 사람, 인구 소멸 지역에 조금이라도 도움 줄 사람 단합해서 쫒아내지 말라고 토착민 교육 시키는게 우선일 것 같다.
뭐. 분노로 나불댔지만 당연히 결론은 없고, 지지 않겠다. 쫄지 않겠다. 라는 독기만 남았다. 산독기!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