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동네 시공사, 집 짓다가 도망갔다더라!
세상 모든 일이 처음 해 보는 일은 어렵다지만, 집짓기 처럼 큰 돈이 쑹텅쑹텅 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정말 매 순간. 한 단계씩 넘을 때 마다 진땀이 났다. 서울같으면, 땅값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신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건만 공시지가가 낮은 시골은 어림도 없다. 농촌주택지원사업 같은게 있다만, 요구 조건이 까다롭다. 심지어 얼마 빌려주지도 않는다. 땅 살 때 대출을 껴서 샀다면, 더 암담해진다.
설계도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시공사 계약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본 게임이다. 가장 큰 돈이 오가는 단계이다. 어떤 담보나 보장없이 그냥 믿고 돈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 열리는 것이다. 특히나 시공사에 대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정말이지..건축판 전설의 고향의 주연급 아닌가. 괴담급으로 오싹한 이야기들이 어찌나 들려오는지. 인터넷을 보다가 주변(주변까진 아니고 먼 동네, 고성)에서 숙박업을 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다. 고성의 어느 펜션이었는데, 블로그에 건축의 고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놓으셨더라. 시공사가 하자보수를 해주기 싫어서 잔금을 안받고 튀었다고 했다. 어떤 카페에 갔는데, 타일 마감이 너무 잘되어있어서 소개를 받아 데려왔더니 개판을 쳐놓고 갔다고 했다. 시공사가 타일 작업 시일을 너무 짧게 줘서 화가난 나머지 아무렇게나 대충 해놓고 가버린 것이다.
뭐 말해 뭐해... 그런 케이스는 우리집에도 있다. 부모님이 옆 집에 사는 이웃인 실내 인테리어 업자에게 거금을 주고 맡겼는데(막 베란다에 포석정마냥 물흐르고 그런 컨셉...) 돈만 끝없이 달라고 하다가 제대로 한 것도 없이 튀었다. 소송을 걸었더니 위장 이혼을 해서 여전히 옆집에 인테리어 업자의 부인이 잘먹고 잘살고 있는 속터지는 상황까지...!
시공의 단계는 반드시 뭔가 뒤틀리고 잘못된게 있는 두렵고 암담한 영역으로 느껴졌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지방에서는 그 지방의 지역 시공사를 써야 한다. 그래야 텃세도 없고, 업자들의 숙식비나 잡비를 아낄 수 있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해 보였다.
그 무렵 즈음에 주변 바닷가에 들어서는 예쁜 카페나 눈에 띄는 건축물이 보이면, 무턱대고 시공을 어디를 통해서 했는지 물어보곤 했었다. 그 중 지역 시공사가 지은 건물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지역 시공사들은 목조나 철골 구조의 집을 많이 지었다. 징크를 접어서 지붕을 올리고, 치장벽돌을 붙이고 아치형 창문을 달거나 요란한 스패니쉬 모조기와를 붙인 집.
콘크리트는 경험이 많이 없어 보였고 도면도 제대로 보지 않고 평당 얼마!를 부르는 신기도 발휘하셔서 설계 도면을 과연 이해할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그리고 건축을 조금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 설계는 건축물 전반적인 덩어리의 느낌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 이 집은 차분하게 지어야 한다(?) 뭔가 그런 느낌이 드는?!
그러나 시공사를 찾으러 다니는 일도, 시공사를 검증하는 일도, 시공사 내부의 재정 상태등을 파악하여 누가 먹튀를 할 놈인지 가려내는 일도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고 점점 막막해져 갔다.
늘 답은 가까이에 있지!
건축사무소에서 시공사를 추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공사를 계속 추천하셨다.
흔히들 건축사무소가 추천하는 시공사를 쓰면 안된다고 한다. ( 이 세계엔 '카더라!'가 왜 이렇게 많은지!)
건축사무소는 감리를 하고 중재를 해야하는데, 건축사무소와 시공사가 짝짝꿍이 되어 건축주의 눈을 멀게 한다는 뭐 그런 스토리는 또 어느 바람을 타고 흘러흘러 전해져 오는 것이다.
다른 건축사무소였으면, 제이와이아키텍츠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아마 의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계를 진행해오면서 쌓인 신뢰는 이런 순간을 꿀꺽 넘기게 해주었다. 물론 아틀리에 건축사무소와 여러번의 프로젝트를 해온 시공사라면 건축비가 비쌀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 두려움 말고는 없었다.
또 왠지 막연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시공사가 도망가면, 건축사무소에서 책임져 줄 것 같은데...?'
그만큼 우리는 건축사무소를 믿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견적이 나왔다. 충격적이긴 했다. 물가가 올랐고 공사비가 상승했다는 걸 계속 들어왔지만, 정말이지 많이 올랐고 이 비용이면 예전에(코로나 이전) 우리가 원하던 걸 다 지을 수도 있었을 금액이라는게 많이 속상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지각비는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 더 늦추거나 기다려보기에도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내 느린 결정과 번복에 대한 비용이다.
'장고끝에 악수'
어떤 선택의 순간에 고심하는 것을 넘어 생각을 묵히게 되면, 최선보다는 차선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세상은 내 예측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금리만 내리면, 우크라이나 전쟁만 끝나면,과 같은 전제는 필요없다. 어느날 어디에서 또 어떤 문제가 터져 또 뭐가 잘 안되고, 또 뭐는 생각보다 잘되고.. 계속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예측하지 말고, 예단하지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시공사는 제이와이아키텍츠와 여러 번의 프로젝트를 함께해 오며, 특유의 진실됨과 성실함을 보여오신 '착한 분'이라고 소개 받았다. 그리고 시공사에도 우리를 '착한 건축주'라고 소개하셨다고 했다.
견적 부분에서 시공사도 우리의 찌질부리한 요청을 많이 수용해주셨고, 우리도 제이와이아키텍츠의 도움을 받아 건축 업계의 생리를 이해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소장님과 대리님은 다소 착잡하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미팅 자리에 나오셔서 시공사 대표님과 나를 번갈아가며 보셨다.
우린 그렇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었다. 나는 건축주인 내가 할 일을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