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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이즈아프리카 Aug 20. 2023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집을 10년 살 것 처럼 짓지마라

"10년 살 것 처럼 짓지말고, 1년 살 것 처럼만 지어"


내 주변에는 살면서 집을 직접 지어보신 분들이 꽤 많다. 주로 60대의 손님이 많이 찾으시는 아프리카 여행사 이다 보니, 그 분들의 말을 통해 다양한 미래를 상상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 (아프리카 여행은 보통 두 가지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 주 고객층이다. 돈 또는 시간.) 58년 개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교외의 전원주택 열풍이 불었듯, 손님들 중 많은 분들이 전원주택을 소유하고 계신다. 모두들 하나같이 하신 말씀이 짓다 보면 욕심나서 자꾸 이것저것 추가하게 되는데, 막상 살다보면 별 거 없고 회수할 수 없는 돈만 왕창 깨지니 남이 살 집 처럼 지으라는 것이었다. 그림 같이 지어진 집에서 평생 살거라 생각하지만, 여러 다양한 이유들로 그 다짐과 꿈은 지켜지기 힘들다고. 특히나 나이가 들면서, 본인 뿐 만아니라 배우자도 건강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결국은 도심으로 가게 된다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이 집에서 죽을 때 까지 살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때가 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나는 아산병원에 기부를 해서 명예의 전당에 내 이름을 붙여놓고, 아산 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몇 년 전부터 부모님과 친척들이 큰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기게 된 것이 크다. 뇌종양, 췌장암, 폐암, 심혈관계 질환등. 수술하기 어려운, 아니 그보다 듣는 순간 하늘이 내려앉을만한 심각한 병들이다. 부모님과 친척들 모두 지방에 계시지만, 결국 종착지는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얼마전 사우디 왕세자도 수술을 하고 간 최첨단 의료 설비와 훌륭한 의료진을 갖춘 그 아산병원 말이다. (아프리카의 대통령과 부자들은 아프면 사우디나 카타르에 가는데! ) 조금만 큰 병을 앓으면 알게 된다. 우리나라는 서울대병원 또는 아산병원에 내로라하는 명의들이 다 포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시스템은 모르나, 아산병원은 고액 기부자를 별도로 관리해주어 진료와 예약이 수월하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내 노후 목표가 수정되었다. 아산병원에 10억 기부하고 근거리에 살기. 그만큼 의료 시스템은 노후의 필수 요건이다. 


 그래서 지금 집을 시골에 짓는다. 

지금 아니면 못한다. 나이를 먹으면 더 두려워질 것이다. 지금의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속으로는 "뭐래 X까" 라고 귓등으로도 쳐내버리는 사람이지만, 이조차도 20대의 나에 비하면 소심하기 짝이 없다. 나이들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울그락불그락한 감정의 동요가 예전보다 사라져서 감정적으로는 편하지만, '욱'하는 김에 와르르 움직여보던 그 '똘끼'-어쩌면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도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미약하게나마 '욱'하고 지를 수 있을 때, 마음껏 질러보자고! 


세 번째 설계, 이제 돌이킬 수 없다 ! 

세 번째 설계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다짐한 것이 있었다. 무조건 "YES"만을 외칠 것.

무조건 소장님의 설계를 찬성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갔다. 지금이 최선이고 지금이 최고다. 벌써 1년이 훨씬 지났다. 여름에 처음 뵌 검정 브이넥 반팔티만 입는 소장님이 사계절내내 검정 반팔티만 입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렸다. 보통 설계는 2개월 남짓한 시간에 완성되기 마련인데, 이정도 시간에 이정도 대화를 나누었으면 우리 부모님보다 더 내 현재 상황이나 바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실테다. 무조건 OK!!!!

 비장한 얼굴로 들어섰는데, 맙소사. 

설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단순하고 직관적이면서도, 무게감 있고 멋있었다.

여기에 뒤따르는 금전적인 부분들을 감당할 마음과 확신이 생겼다. (드디어, 이제서야, 진즉에 그랬어야했는데 너무 우왕좌왕했다). 이 과정에서, 팀장님은 건축사무소를 그만두시고 얼굴이 마알간 대리님이 우리 프로젝트를 맡게 되셨다. 팀장님이 그만두신 계기에 우리 프로젝트의 허망함도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에너지와 열정을 먹은 설계안이다. 중간에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더라도 그걸 상기하며 우리도 그 순간을 넘겨야겠다. 얼굴이 말갛고 눈이 초롱한 저 대리님에게 '완수한 프로젝트'로 남아야겠다. 스스로 다잡기 힘들 때에는 가끔 엮인 것들을 생각하며 넘기는 것도 필요하다. 


 무튼 좋은 건축사무소 덕에 그토록 어렵기만했던 한 단계를 드디어 넘었다.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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