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든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짧은 여행은 늘 아쉬웠고, 긴 여행이 좋았다. 며칠씩 집을 비우는 그 시간에 목말랐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가득한 그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내가 늘 보던 익숙한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보는 게 좋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짜릿한 것은 낯선 곳에서의 익숙함이다.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일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는 일까지도 특별해지는 것.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들에서 몰려오는 행복감. 그게 바로 떠나는 사람만이 느끼는 특권이 아닐까. 더 자주 행복을 느끼는 것.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지 못했다.
나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엄마가 되는데 익숙해질 그때쯤 아기와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짧으면 2,3년 길면 평생이 될지도 몰랐던 우리의 여행은 코로나 때문에 일찍 문을 닫았지만 잠시 동안 허락된 그 짧은 여행에서의 그 시간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아기와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 수없이 해 온 그 전의 여행과는 걱정의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혼자 하는 여행은 걱정보다 설렘이 먼저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그 어떤 감정보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여행이다. 그래도 아기와 떠나는 여행은 부모가 된 이후 모두가 꿈꾸는 일일 것이다.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실수해도 괜찮다. 조금 헤매도 괜찮다. 하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을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 혼자가 아니니까, 아기가 있으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의 실수하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미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혼자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을 가기 전, 엄마는 "비행기 잘못 탈라 조심해라"하고 말했다. 나는 "엄마, 바보도 비행기 잘못 타는 일은 절대 없다. 걱정마라."하고, 하하 웃으며 떠났다. 무사히 시애틀에서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나는 또 다른 도시 뉴욕에 다녀왔다.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친구가 있는 곳, 벨링햄으로 갈 여정이 남아있었다. 벨링헴까지 가는 직항이 없어서 JFK공항에서 시애틀에 내려 다시 트랜스퍼해서 벨링햄으로 가야 한다. 무사히 시애틀에 도착해서 잠시 대기 후, 벨링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1시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펭본(Pangborn Memorial Airport)에 떨어졌다. 나의 짐은 벨링햄에 이미 도착했고, 나만 여기 덩그러니 남았다. 너무 작은 공항이라 데스크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여기 어디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고, 중년의 남자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몇 번이고 대답을 해줘도 내가 못 알아듣자 그는 나를 데리고 표지판 앞으로 갔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 포스터를 가리켰고, 그 포스터에는 Pangborn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워싱턴에 위치한 아주 작은 소도시 중 하나였다. 아마 이 날 여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들어도 보지 못한 도시 중 하나였겠지. 나는 분명 벨링헴에 가는 티켓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이가. 너무나 당당하게 게이트를 통과한 일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의 시작이었다. 왜 나는 게이트를 잘못 들어갔으며, 왜 그 승무원은 내 티켓에 빨간 색연필로 체크를 했으며, 왜 내 자리는 비어있었을까. 어찌 되었든 비행사 측의 잘못도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벨링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과, 숙박, 그다음 날 점심까지 먹을 수 있는 바우처를 챙겨주었다. 엄마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자 나는 당황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긍정 그 자체였던 나의 20대는 그 실수가 신나고 즐거웠다. '내가 언제 또 여길 와보겠어. 거기다 공짜 호텔에 공짜 비행기야 신난다!' 했지. 지나고 보니 혼자라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때문에 2시간 거리나 걸리는 시애틀까지 이틀 연속이나 마중을 나와야 했던 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이 이제야 드네. 하하.
잠시 추억 여행에 젖었지만 이제 정안이와 함께 하는 모든 여행에서 이런 실수는 절대 없어야 한다. 아기는 비행기를 탈 때 귀가 아플 수도 있고, 너무 잦은 비행은 아기의 컨디션을 나쁘게 하니 실수는 없어야 한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가득 안고 우리는 부산에서 인천으로 또 인천에서 브리즈번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곧 이곳에 살게 될 것이라는 부푼 희망도 조금 안고.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품고.
이렇게 우리 세 가족의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