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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Dec 07. 2021

김밥을 만들었다

 우리 엄마는 가끔씩 (꽤나 자주) 김밥 재료와  마당에서 자라난 과일, 주변에서 나눠  채소와 각종 냉동식품을 택배로 보내 주신다. 엄마와 아빠는 이런 냉동, 냉장식품 관련 대리점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에는 어묵, 맛살, , 단무지와 우엉,  손질된 시금치, 갓김치와 신김치, , 상추, , , 키위  알을 보냈다. 운동 할머니가 보낸 택배 안에는 정안이 과자도  개씩 들어있는데 그래서인지 그때마다 정안이는 운동 할머니가 보낸 택배를 정말 좋아한다. (영상통화를 거는 시간이 보통 오후 5-6 사이인데 엄마는 그때 밖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정안이는 엄마를 운동 할머니라고 한다.)

 엄마가 김밥 재료를 잘 보내주는 이유는 정안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김밥이나 한 번 싸 먹어라~"하고 보내 주셨다. 정안이는 새로운 음식은 잘 안 먹는 아이인데 그중에서도 김밥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먼저 혀로 날름날름 맛을 보고 맛이 있어야 먹는데 씹어야 맛있는 김밥은 영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정안이는 김밥은 안 먹어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김밥 재료를 보내주셨고, 그럼 정안이랑 놀 겸 "같이 만들어보자!"하고 직접 자기가 밥을 깔고, 재료를 골라 넣어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김밥을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기가 싼 김밥을 너무 잘 먹는 것이다.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그 이후로 우리 집에는 더 자주 김밥 재료가 날아온다.



정안이가 만든? 아니 재료를 골라 넣은 김밥. 시금치 no, 단무지 no, 우엉 no 그러나 당근 lover.

 

 김밥은 레시피 없이 만드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다. 재료는 햄, 맛살, 당근, 시금치, 계란, 단무지, 우엉, 김밥김과 밥이다. 김밥의 장점은 꼭 저 재료를 다 넣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맛살이 없으면 빼고, 어묵이 없으면 빼고, 시금치가 없으면 빼도 전혀 상관없다. 그래도 맛있다. 정안이를 위해 볶은 소고기가 추가되었다. 계란을 못 먹기 때문에 대신 소고기를 넣었다. 햄이 없으면 참치를 넣어도 된다. 뭐든 넣고 뭐든 넣어도 되는 재미있는 김밥 세상. 이제 재료 준비 과정을 살펴보자.

 

1. 당근은 잘게 채 썰어 소금을 쳐 놓는다.

2. 소고기는 간장, 설탕, 맛술, 후추를 조금씩 넣고 버무려 놓는다.

3. 시금치는 물에 소금을 넣고 팔팔 끓으면 데쳐서 차가운 물에 헹구고 꽉 짠다. 그리고 국간장, 참기름, 멸치액젓, 깨소금을 넣고 팍팍 무친다. (정안이가 혹시나 김밥에 시금치를 넣는다고 할까 마늘은 넣지 않았으나 시금치 한 번도 안 먹어 본 놈이 시금치 넣을까? 하니 우웩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 놓으면 김밥에 넣어도 되고, 따로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다.

4. 햄과 맛살은 잘라서 구워준다.

5. 우엉과 단무지는 시판용이 아주 잘 나온다.

6. 밥은 좀 고슬고슬하게 하는 것이 좋다지만 너무 고슬고슬하면 끝이 잘 안 붙어서 그냥 일반밥처럼 한다. 거기에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해준다. 눈대중으로 대충 해도 된다. 너무 짜지만 않으면 된다.

 7. 계란은 지단을 붙여 얇게 썰어준다. 교리 김밥 스타일로다가. 계란 알레르기 아기와 살기에 나는 계란을 너무 좋아한다. 흑.


 보기엔 쉬워 보여도 재료 준비하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이제 김밥을 말아보자.


1. 김밥김을 발 위에 얹고, 밥을 얇게 펴서 김밥 전체에 구석구석 깔아준다.

2. 준비한 재료를 하나씩 얹는다. 순서 없음이다.

3. 발을 사용해 동그랗게 말아준다.

4. 김밥김이 떨어질 때까지 반복한다.

5. 썰어서 맛있게 먹는다.


 재료 준비가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사실 만드는 건 금방이다. 이렇게 김밥을 만드는 날엔 좁은 주방이 슬퍼진다. 김밥을 말 때는 사실 김밥김이 중요하다. 잘 찢어지는 김이 있고, 잘 찢어지진 않지만 조금 질긴 김이 있다. 나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터진 김밥은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일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김밥을 터지지 않게 만드는 또 하나의 팁은 밥을 조금씩 얇게 까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시중에 파는 다양한 김밥김들을 사용해 보는 편이다. 만든 김밥을 남편과 함께 여섯 줄이나 먹었다. 김밥의 유일한 단점이다. 엄청난 양이 계속해서 들어간다. 정말 신기하다. 콩나물국을 같이 끓여 먹어서 망정이지 라면을 끓여 먹었더라면 배가 터졌을 것이다.

 원래도 김밥은 우리 부부의 소울푸드였다. 밴쿠버에 있던 시절 김밥을 어지간히도 많이 싸 먹었다. 밖에서 사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 비싼 외식비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집에서 곧잘 받을 해 먹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이었고, 그중 하나가 김밥이었다. 재료 준비가 생각보다 수월한 것도 있지만 한 번 싸면 두 끼, 세 끼는 뚝딱 해결할 수 있었기에 김밥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저녁에 만든 김밥은 우리의 저녁 메뉴가 되고, 다음날 오빠의 도시락이 되었고, 저녁엔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서 계란옷을 입혀 기름 두르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또 새로운 저녁 메뉴가 되곤 했다. 다행히 우리 둘 다 김밥을 좋아해서 다행이지 둘 중 하나가 김밥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김밥을 싸고 있노라면 케이크처럼 쌓아 올린 김밥을 다 먹고 터질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나서는 산책길이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제는 김밥 하면 엄마가 생각난다. 여기서도 다 살 수 있는 것들을 넣어서 보내 주는 그 택배를 싸는 마음이 어떨지 상상하면서. 그냥 마트에 가도 다 살 수 있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 주는 엄마의 택배가 기다려질 때쯤 나는 또 김밥을 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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