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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r 25. 2022

제주, 오늘의 날씨

 요즘 제주의 겨울은 참 따뜻하다. 

 춥고 따뜻하고의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어제는 보일러를 틀지 않고 잘 정도였으니 따뜻한 게 맞는 것 같다. 정안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아침마다 두꺼운 등산 브랜드 파카를 입혀서 나왔는데 그게 미안할 정도로 따뜻했다. 그냥 조끼나 입혀서 나올걸. 혹시나 바깥놀이를 가면 추울까 봐 매일 내복에 두꺼운 파카를 입혀 보낸다. 하지만 낮엔 언제나 따뜻해서 놀 때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추운 것보단 더운 게 낫지!’라던가, ‘저녁엔 추울 거야.’ 같이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따뜻한 제주의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특히 올해는 더 따뜻한 것 같다.

 작년 겨울엔 눈이 많이 왔었던 기억뿐이다. 이래서 기록은 중요하다. 긴 겨울의, 거의 4개월 정도 되는 겨울 기간의 기억이 '눈이 많이 왔었다.'라는 아주 짧은 문장 하나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12월엔 정말 따뜻했었다. 이게 봄인지 겨울인지 모를 정도로 따뜻했는데 1월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행복했고, 2월엔 봄이 빨리 온 것처럼 따뜻했다.' 라던가 아니면 '12월 1일 14도. 12월 2일 10도.'와 같이 숫자로 간단하지만 추웠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적는 것도 괜찮고. 숫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때론 이런 숫자가 가장 진실된 것을 기록하기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띄엄띄엄한 기록은 과거를 어지럽히기만 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2021년 12월 10일 금요일. 오늘 바깥 온도는 14도. 실내 온도 22도. 습도는 가습기 켜지 않고 58%인 걸 보니 오후에 비가 올 것 같다. 그래도 바람이 덜 불어서 나쁘진 않다.


 요즘 제주의 봄은 참 춥다. 

 지난겨울에 이어 다시 이 글을 다시 적어 내려가는 지금도 바람 소리에 깜짝 놀랄 만큼 바람이 많이 분다.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베란다 문을 닫았다. 바람이 차갑다. 분명 몇 주 전에는 너무나 따뜻한 봄 날씨에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옷이 젖을 정도로 뛰어놀았다. 그러나 찰나의 행복이 끝나고 세탁해서 넣어 둔 파카를 다시 꺼냈다. 정말 길다, 제주의 겨울. 지난 2월에도 남편과 겨울이 너무 길다. 지긋지긋하다. 이제는 좀 끝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3월의 끝자락에 온 지금 역시 겨울의 연속이다. 이게 꽃샘추위인 걸까? 따뜻한 시기가 너무 짧았어서 그냥 겨울의 연속인 것 같다. 오히려 12월의 겨울보다 더 추워서 아직까지 보일러를 돌리고 있다. 이렇게 긴 겨울은 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하다. 오를 데로 올라버린 기름값과 벽을 뚫고 들어오는 웃풍까지 더해지면 집안보다 집 밖에 더 따뜻한 경우도 있다. 

 3월 25일 바깥 온도 9도. 실내 온도 21.9도.  습도는 가습기 켜지 않고 50%. 발이 시려서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털실내화도 꺼냈다.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니 체감 온도는 조금 더 낮은 듯하다. 생각해보니 4월에도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생각보다 날이 덜 추워서 정안이는 옷을 얇게 입고 갔는데, 이 정도 바람이면 하원길에는 두꺼운 파카를 가져가야겠다. 길다 겨울. 이번 주말에도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날씨겠지? 실내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이보다 안 좋은 소식은 없다.


 제주의 날씨는 가늠할 수가 없다. 어제는 따뜻했어도 오늘은 추울 수가 있다. 어제는 기가 막힌 하늘을 보여주었다가 갑자기 며칠 내내 흐릴 때도 많다. 가끔 여행객이 많이 오는 관광지에 가면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보인다. 나는 파카에 장갑에 기모가 들어있는 바지를 입고도 너무 추워 안으로 들어가자고 외치고는 "아휴 추워." 하고 자리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면, 맨다리에 미니스커트, 아주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예쁜 모습으로 사진 찍는 친구들을 볼 수 있다. "젊은 게 좋다, 정말."이라는 말이 그냥 입 밖으로 나오곤 한다. 남는 것은 예쁜 사진인 게 맞지만 제주 여행을 할 땐 꼭 따뜻한 아우터를 하나씩은 챙기는 걸 추천한다. 육지에서는 맞을 일 없는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짐이 조금 많아지겠지만 제주도 날씨가 따뜻하면 여행하기 좋은 거고, 추우면 꺼내 입으면 되니 하나쯤 챙기는 건 나쁘지 않은 투자이다. 나처럼 추위에 약하다면 더더욱이. 

 제주도에 살다 보니 생각보다 제주의 날씨가 매번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체 속에서 보는 것처럼 매일 외국 같은 햇살과 바다, 겨울에는 육지보다 따뜻한 기온으로 마냥 좋을 것만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미 사라진 단어인 듯한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있다. 3일 추우면 4일이 따뜻하다는 뜻인데 제주의 날씨가 꼭 그렇다. 주로 동부아시아에서 자주 나타나는 날씨의 특성인데 우리나라는 삼한사온이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는 글을 보았다. 하지만 이곳 제주는 여전히 삼한사온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일주일 내내 흐린 날도 있지만 보통을 흐리고 맑고를 반복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겨울옷도 정리 못하고, 봄옷도 정리 못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있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계속 밖을 내다보고 문을 열어 보며 날씨가 어떤지 체크하는 5년 차 엄마도 있다. 그날 아침의 날씨가 하루 종일 같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바람이 조금 멎었다. 바람만 불지 않아도 밖에서 한참 뛰어놀다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매일의 날씨가 그림 같을 수는 없지만 그날의 날씨에 맞게 음료를 고르고, 어떤 것을 하고 놀지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가 달라지는 제주는 매일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환상적이게 아름다운 날씨가 아니더라도 흐리더라도, 비가 오더라도 그만의 매력이 가득한 이곳에 사는 오늘을 감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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