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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Jan 06. 2022

주차 뺑소니를 당했다.

  처음으로 주차 뺑소니를 당했다. 그것도 3번이나.

 우리 차는 우리에게 온 지난 몇 년간 단 한건의 사고도 없었다. 제주에 와서 차가 소위 말해 똥차가 되었다. 누군가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불법주차를 해 놓은 것도 아니고, 갓길 주차를 한 것도 아니고 멀쩡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오면 누군가가 긁고 지나간다. 육지에서는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던 일이다. 특히 밤에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하고 지나간다면 잡을 길이 없다. 이 무용지물 블랙박스는 어두운 밤에 일어난 일을 잡지 못한다. 그리고 제주의 골목골목에는 육지처럼 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경찰 쪽에서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첫 번째 주차 뺑소니는 박물관 주차장이었다. 그래도 이건 어딘지는 아니 다행이다. 하지만 그걸 발견한 곳은 그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였다. 발견한 그 자리에 앉아 블랙박스를 돌려보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남편과 나는 잡아내겠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지 몰라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블랙박스 속에서 제일 의심스러운 차량이 한대 발견되었다. 굳이 굳이 많은 주차 자리를 놔두고 우리 차 옆에 주차를 하더니 기어이 긁고 지나갔다. 이건 물증이 없는 심증이다. 블랙박스에는 그 차가 우리 앞을 스윽 지나가는 것만 찍혔지 (아주 가까이) 정확한 번호판이 나오지 않았고, 박물관 측 cctv를 돌려보았지만 정확한 번호가 찍히거나, 정확하게 사고 현장이 찍힌 게 아니라서 애매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열정을 다해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힘이 빠졌다.  


 제주도에는 초보 운전자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절대 좁은 골목에 들어가지 않고, 초행길은 혼자 가지 않는다. 그리고 T자 주차는 절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어디든 주차 자리가 넓은 곳, 마트에서는 제일 꼭대기층, 혹은 제일 지하로 간다. 몇 층 더 올라가는 수고로움이 다른 차를 방해하거나, 박는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나 같지 않다.

 오늘 긁힌 자국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블랙박스는 역시나 무용지물이다.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감지되기 때문에 이런 걸 찾으려면 하루 종일 잡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 화면이 뒤로 넘어가서 지워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주차 녹화가 되면서 어째서 너는 결정적인 순간을 한 번 못 잡니? 요즘은 집-정안 어린이집-집 만 하기 때문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 우리 아파트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라서 따로 입주민 차량만 들어와서 주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무나 다 댈 수 있기 때문에 주차장은 늘 복잡하다. 거기다 가로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기에 어둡기도 하다. 어젯밤에는 없던 자국이 오늘 아침에 떡하니 생겨 있을 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요즘 고민은 이것이다. 내가 만약 주차된 차에 데미지(damage)를 입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나는 세 번의 주차 뺑소니를 당했고, 억울하고 화가 난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누군가의 차를 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마 나 역시 그냥 갈 것 같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당했으니까. 차를 긁고 간 사람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딘가에서 당했기 때문에 본인도 그냥 가는 것일까?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다.

 아니다. 나는 선량한 시민이고 주차 뺑소니는 세상에서 제일 기분 나쁜 일 중에 하나이니 이런 기분을 차주에게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람 된 도리가 아니다. 바로 차량 앞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이실직고해야 하는 게 맞을까? 어차피 날 못 찾을 텐데? 정답은 나 역시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주차장에 차를 대도 항상 불안한 기분이 든다. 내 집 주차장이 가장 불안하고, 밖에 나가서도 불안하다. 1월부터 사람을 미워하게 생겼으니 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글쎄 나는 그런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진 못할 것 같다.

 다음번 뺑소니범은  잡을 거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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