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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Apr 21. 2022

프로불편러의 하루

 나는 '프로불편러'다. 

 네이버의 시사상식사전을 빌리자면 프로불편러란 매사 예민하고 별거 아닌 일을 과대 해석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나는 저런류의 프로불편러는 아니고 어떠한 상황에서 쉽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 스스로 프로불편러라고 여기는 것이다. 논쟁을 부추기는 일 또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프로불편러는 길을 걷다가도 불편한 상황을 자주 직면하게 된다.


 오늘 역시 불편한 일들이 많았다. 

 정안 담임 선생님이 연차로 쉬는 날인데 하원 시간 가까워졌을 무렵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쉬는 날 무슨 일이지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정안이 바깥놀이를 하다 친구랑 박아서 눈썹 밑에 멍이 크게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다치는 것에는 좀 관대한 편이다.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지금껏 크게 다친 적도 없으니 말이다. 어린이 집에 도착해서 눈썹 아래, 눈두덩이에 멍이 든 걸 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 꽤 크게 다친 상처였다. 멍이 든 게 아니라 그 위에 살이 까져 빨갛게 점이 찍혀 있었다. 그냥 친구와 박았다고 하기엔 큰 상처라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시니 누가 정안이 반 누리 선생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안이를 데리고 내려온 선생님께 여쭤보았는데 그분의 대처가 너무 차가웠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나중에 전화 줄게 라는 식의 표현과 표정과 말투가 기가 찼다. (물론 저렇게 얘기 한 건 아니다.) 예전의 나 같으면 선생님 성함 뭐냐고, 이 어린이집의 다른 반 선생님이신지 누리 선생님인지 알아내서 원장에게 컴플레인을 걸었을 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 앞으로의 어린이집 생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내일 담임선생님께 얘기 듣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선생님의 그 뚱한 표정이 계속 생각났다. 하지만 뭐라 불평할 수 없는 엄마의 입장이다. 조금만 미소를 지어줬어도 됐을 텐데. 

 그리고는 어제 초콜릿 케이크가 먹고 싶다던 정안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아빠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아빠도 기다릴 겸 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버스에서 갑자기 싸움이 났다. 별 거 아닌 일로 두 아저씨들이 서로 욕설을 내뱉고 소리를 지르고 약간의 손지검이 오갔다. 짐을 왜 빈자리에 놔뒀냐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 서서 가는 거 안 보이냐, 아니 의자에 사람만 앉으라는 법 있냐 하면서 정말 10대도 이런 걸로는 안 싸울 것 같은데 나이가 40대 아저씨와 6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쌍욕을 하며 싸우다니, 정말 기가 찼다. 기사는 모르는 척 나 몰라라 하고 있었고, 버스 안에는 중, 고등학생들이 가득했다. 나이 든 아저씨가 "기사님!" 하며 불렀지만 끝까지 대답도 않고 모른 척하는 그 버스 기사가 정말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어른들, 심지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조차 그들을 말리지 못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뒤에서 소리치고 싶었다. "학생들 많은데 욕을 왜 그렇게 하세요! 싸울 거면 내려서 싸우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정안이가 옆에 있기도 했고, 저 정신 나간 아저씨가 정말 칼을 들고 나를 쫓아 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한 내가 미워졌다. 그냥 택시 탈 걸. 

 그렇게 혼자 화를 내며 카페에 도착해서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와 딸기주스를 시켜서 나눠 먹고 있을 때 카페에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가 주문 좀 하겠다고 카운터에서 직원을 불렀다. 직원들은 뒤쪽에서 뭔가를 하느라 분주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때부터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젊은 직원들은 케이크 산다는 할머니 말에 무인결제시스템을 사용하라고 말하고는 바로 그 자리를 피했다. 할머니는 우물쭈물하더니 기계 앞에 서셨다. 가서 '도와드릴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모르는 사람과 가까이 대화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터라 쉽사리 나설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혼자 어째 저째 주문을 마무리하셨고, 직원은 그제야 나와서 케이크를 포장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기는 홀케이크를 사고 싶은데 왜 조각 케이크가 나오냐고 의아해하셨다. 더 이상 불편해서 나는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이 카페의 직원이라면 처음부터 바로 주문을 도와드렸을 텐데. 요즘 애들은 아닌가 보다. 나는 이렇게 꼰대가 되어 간다. 프로불편러와 꼰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잠깐 동안의 외출이었다. 겨우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 사이에 나는 불편한 일들을 많이 목격하고 겪었다. 그동안 사람을 너무 안 만나서일까? 아니면 내 성격이 이상한 걸까. 

 그들 때문에 나는 너무나 불편하지만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이 불편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불편한 것일까?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냥 흘러가야겠지. 앞으로 세상은 더 무서워질 테고 낯선 이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런 것들은 잘 받아들인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니까 하면서 이해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 낯선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불편함은 참을 수가 없다. 역시 내가 이상한 건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걸 보며 불편해하는 내가 진짜 이상한 건가.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배려하고,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보같아져서는 안될 것 같은데.

 프로불편러인 나는 오늘도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겠지만,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맘 좋은 아줌마가 되기 위해서 참고 또 노력해야겠다. 푸근한 아줌마의 길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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