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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Jul 28. 2022

행복의 정의

  아주 예전에 누군가가 나는 너무 굴곡이 없는 인생을 산다고 한 적이 있다. 인생이란 파도가 치고, 태풍이 부는 그런 바다여야 하는데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은, 내가 살아온 시간은 잔잔한 바다 같은 삶이라고. 이게 칭찬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헛갈린다. 이런 잔잔한 일상을 사는 단점 중 하나라면 매일 쓸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매일 무언가를 써내려 가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매일 무언가를 쓰는가에 대한 그런 궁금증. 하지만 한편으로는 잔잔한 내 삶에 행복과 감사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다. 찌는 듯한 햇볕 아래에서 잠시 불어오는 바람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행복이 뭐 별 거 있나. 자다가 뒤척이는 아기 이불 덮어주고 새벽녘 어스름히 들어오는 그 밝음에 기대 귀여운 얼굴로 다시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이 얼굴을 내가 보는 그 시선 그대로를 박제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너무 이른 시간에 깨어버린 것이 짜증스럽지 않고, 이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해진다. 비염 아기는 봄철의 밤에 자주 뒤척인다. 코가 막혀서 답답하고 짜증날만도 한데 잠에 취해 뒤척이기만 하는 아이가 짠하다. 짠하면서도 고맙다. 여름이 되면 좀 괜찮아질까?

 어느새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6월 말부터 높은 온도와 습도로 벌써 여름이 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름 아기는 좀 더 활기차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생각했지만 여름의 아기는 정말 귀엽다.

 20대부터 해변에 누워 피부를 태웠다. 올여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덥고 파란 하늘 아래 눕기 위해 함덕을 찾았다. 해수욕장 개장 전이었으니 아마 6월 마지막 주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내 생에 처음으로 태닝을 하다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 가서 “화상입니다.” 땅땅! 하고 확답을 받은 건 아니지만 따가워서, 간지러워서 밤잠을 설쳤으니 화상이겠다, 싶었다.) 뜨거운 서호주 햇빛 아래에서도 이런 적 없었다. 발리에서도, 다낭에서도, 방콕에서도, 세부의 햇빛 아래에서도 이랬던 적이 없다. 그래도 이런 햇볕 아래 누워있을 수 있음이 행복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일주일 중 3-4일은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하기 때문에 햇볕이 쨍한 오늘이 감사하다. 화상을 좀 입으면 어때, 여름의 흔적인데. 그 흔적은 또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겨울이 되면 이 여름을 그리워할 거면서. 이 여름의 조각을 찾을 거면서. 

 여름이 되니 제주도 우리 집에 손님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한다. 첫 손님은 사랑하는 나의 시부모님. 제발 오시라고 오시라고 말한 지가 1년째인데, 겨우겨우 급하게 오시게 되었다. 엄마의 짐은 우리 먹일 소고기와 각종 김치, 밑반찬뿐. 며느리 힘들까 봐 밥은 매끼 밖에서 사 먹고 집에서는 일절 아무것도 준비하게 만들지 않으시는 분들이시다. 밖에서 먹는 밥은 모두 아빠가 사주시고, 공항 가는 길엔 우리 며느리 고생했다며 용돈을 쥐어 주신다. 아무것도 한 것 없는 며느리는 괜히 더 죄송스러워진다. 정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 할머니랑 잔다고 할머니 옆에 누웠다가 할아버지 옆에 누웠다가 결국 늦게 잠들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울지도 모른다. 8월이 되면 할머니가 또 오냐고 물어본다. 새로운 나의 가족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어느 일요일 늦은 오후, 남편이 먹을 된장찌개를 끓이고 정안이 먹을 볶음밥을 만드는 더운 주방 안에서 나는 또 행복을 느낀다. 내가 만든 이 요리를 맛있게 먹어 줄 두 사람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 두 사람은 맛있는 저녁 냄새를 맡으며 각자의 행복 속에서 같은 장면, 다른 기억으로 지금을 흘려보내겠지.


 각자가 만든 행복이라는 기준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 삶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기준을 만든 나 자신조차도.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가끔은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여유 조금은 있겠지. 내가 지금 잔잔하고 조용한 호수 같은 삶을 산다 해도 나는 행복할 것이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검은 바다 같은 삶 속에서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행복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땅을 파고 들어가기보다는 한줄기 햇볕을 찾는 사람이다.  

 나의 행복이 가장 1순위인 사람이 있다. 그건 남편일 수도 있고, 부모님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아무도 없다면 그건 내가 되면 된다.  24시간 내내, 1분 1초가 행복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만 아주 잠깐의 찰나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작은 행복을 찾아보는 것. 내가 내린 행복의 정의가 나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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