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성킴 Jun 15. 2022

나의 생일을 축하해

 

1년의 한가운데 있는 6월을 좋아한다.


 그중 6월의 중간인 15일은 내 생일이다. 생일이 있어서 6월을 좋아한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1년의 정중앙에 있는 이 날짜가 제법 마음에 든다. 어린 시절엔 집에 친구를 초대해서 김밥이나 떡볶이, 잡채를 만들어 파티를 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 외에 생일날 특별한 추억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땐 그 맛없는 버터케이크도 없어서 못 먹었다. 그냥 이 땅에 태어났다는 그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는 편이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큰 탈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물이고, 행복인 것을.

 20대 때는 친구들과 그래도 생일이라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정안이와 남편과 셋이서 초를 부는 것으로 화려한 생일 파티를 대신한다. 왁자지껄하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그런 것도 이제는 재미 없어졌다. 특별한 날이라는 핑계로 좋아하는 케이크를 조각 케이크가 아닌 홀케 이크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 이번 생일 좀 다를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대신 정안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야 한다. 이것이 절대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당연히 케이크 선택권은 정안에게 가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을 끄는 것 또한 정안에게 양보할 것이다. 그냥 케이크를 사면 정안이 먹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는 게 더 행복하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안이와 함께 초를 불라고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품권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으니 생일은 역시 좋은 것이 확실하다.


 제주엔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다. 내 생일에 비가 온 적이 있었던가? 비 내리는 생일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없었나 보다. 하지만 금붕어의 기억력과 비슷한 나의 기억 속에 비 내리는 날이 지워졌을 확률이 더 높다.

 정안은 유모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유모차를 타지 못하고 걸어야만 한다. 걷기 싫어하는 42개월 아들은 "나는 비가 너무 싫어!"하고 아침 등원 길부터 오후 하원길까지 "비가 너무 싫어!"를 외친다. 나 역시 비를 싫어했는데 7월에 오는 습하고 더운 장마보다는 6월에 오는 습하고 선선한 장마가 나은 듯하다. 밴쿠버에서 잠시 지내던 때에는 비를 싫어하지 않았다. 건조한 대기에 내리는 비는 상쾌하고 시원했다. 우산 없이 비옷 하나만 입고 거리를 걸어 다니고, 버스를 타는 것도 좋았다. 젖은 옷으로 물을 뚝뚝 흘리고 버스를 타거나 트레인을 타도 쳐다보며 눈살 찌푸리는 이 하나 없던 것도 한몫한다. 비 오는 생일을 보내겠거니 했는데 웬 일? 생일 아침 햇살이 내리쬐고 새소리가 들린다. 역시 나는 날씨 요정이다. 남편은 요정이라고 하기엔 좀 크고, 날씨 마마 정도가 좋겠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헬스장을 끊고 왔다. 정안을 낳고 나서 바로 했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는데 42개월 만에 헬스장에 등록했다. 나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다. 운동은 내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원래 운동은 내일부터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연어 포케를 포장해서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이 정도면 생일 밥상으로 만족스럽다.

  이틀에 한 번 꼴로 110 볼트 전압기에 캐나다에서부터 가져온 블랙 앤 데커 청소기를 충전한다. 집안일이라는 게 원래 해도 티는 나지 않지만, 하루만 빼먹어도 티가 많이 나는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햇수로 6년 정도 된 이 청소기는 이제 시끄럽기도 하고, 보관하기도 조금 불편하지만 쓰는 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충전하는 것이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계속해도 쓰고 있다. 이 작은 행위는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버린 반복적인 활동이 되었다. 이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생일에도 청소는 해야 한다. 생일이라고 하루 넘겨 버렸다가는 저녁때쯤 머리카락이 떨어진 침대 옆에서 자야 할지도 모른다. 20대에는 생일은 뭔가 특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생일이 일상과 같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24시간 파티를 할 수도 없는데 그땐 왜 그랬나 몰라. 평범함이 가장 큰 무기가 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이제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이것을 언제 깨닫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 게이지가 달라진다. 조용한 생일을 보내면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일을 30번을 넘게 보내고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이번 생일에는 글을 꼭 적고 싶었다. 오랜만에 적어 내려가는 글이 두서없고 엉망일지라도 꼭 하나 적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생일을 기념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길 바랐다. 10년 전의 내가 모든 생일을 해외에서 보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서른다섯의 나는 앞으로의 모든 생일에는 그날을 기록하는 것으로 스스로 축하를 해 주고 싶다. 나에 대해서 스스롤 기록하고 남기는 것. 그것이 미래의 내게 주는 생일 선물이 될 것이다.

 

Happy birthday to me!



 



 

작가의 이전글 5월, 그 잔인한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