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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날씨는 정말 이상했다. 곧 4월인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변덕스러웠다. 맑았던 하늘이 흐려질 틈 없이 눈이 내렸다. 그러다 맑아지고 금세 비로 바뀌더니 사람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일기예보에 나오지 않았던 날씨들. 예측할 수 없었던 기류의 흐름. 구름의 이동 속도. 미세한 기온 차로 눈이 되거나 비가 되거나. 무엇 하나 예상하거나 대비하지 못했지만 이상한 날씨네-하고 넘겼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불평 없이 순순히 받아들인 거다. 삶을 살다 보면 날씨를 비롯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앞에 수도 없이 놓인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럴 수 있지.
예전의 나는 주변에 무척이나 예민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친한 친구들과 모임에서 우리의 대화는 매번 반복된다. 어렸을 때 쟤가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회상하는 일이 가장 많다. 그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초중고를 다 같이 나온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나의 예민함을 가장 옆에서 바라보고 심지어 직접 겪은 피해자다.
고등학교 1학년 영어 듣기 평가 시간이었다. 내신 점수에 들어가는 듣기 평가라 평소보다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딱 중요한 문장이 나오는 타이밍에 그 친구가 큼..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푼 거다. 그 문장을 못 들었다. 그 뒷 문 장에서 내용을 유추했고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정답을 골라야 했다. 쉬는 시간이 되고 그 친구 자리로 찾아갔다. 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따져 물었다. 친한 친구이기에 한두 마디 성질을 부리고 평소처럼 장난치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 성인이 되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친구가 이 얘기를 꺼낸다. 최혜주 고등학생 땐 모든 일에 예민해서 행동 하나 하기 가 어려웠는데 성인 되더니 성인군자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지금도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아직도 마주하는 어려움이 낯설고 주춤하게 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을 보 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분이 미간에 드러난다. 자신의 생각만 강요하는 사람 앞에서는 날카로운 단어만 골라내 주고 싶어진다.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에 하루 종일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나의 미래를 고 민할 때 생각이 엄청 깊어지다 스스로에게 짜증 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마음속에 혼자 중얼거리는 말. 그럴 수 있지.
여전히 예민한 나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예민함을 티 내지 않는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길 바란다. 예민한 기질을 이용하여 글을 쓰고 무언가를 기획한다. 타인의 시선에 밟히지 않는 것까지 보려 하고 그걸 대상의 장점을 보는 데 적용한다. 날씨가 변하는 것처럼 예고 없이 변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를 달래는 일에 쓰려한다. 이상한 날씨를 그대로 받아들인 날처럼 나의 이상함을 마주 했을 때 그대로 인정하기.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