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교보문고에서 만나는 동지들
그냥 코끝이, 눈 가장자리가, 윗입술이 뜨거워지는 날이 있다.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화가 난다거나 슬프다고 정의할 수도 없는 이 마음을 나는 왈칵하는 마음이라 부른다. 어떤 사건에 따른 감정이 선행된 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신체적 특징이 아니다. 왈칵하는 마음은 내 몸이 먼저 ‘왈칵!’ 하거나 얼굴이 ‘찡-’ 한 다음에서야 내가 왜 이럴까 마음을 헤아려 본다. 쉽게 말해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
왈칵하는 마음의 이유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로 호르몬이 있다. 여성들은 매달 꼭 비슷한 시기에 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생리 때문이다. 실제로 아는 한 언니가 친하지도 않은 동기의 갑작스러운 입대 소식을 듣고 펑펑 울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남학생 동기를 언니가 남몰래 좋아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는 그다음 날 생리가 터졌고. 나에게 전화로 어쩐지 본인도 어이가 없었다며 이 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생리 전날이면 별 이유 없이도 잘 운다. 오히려 울음 없이 생리가 터진 날에 ‘오, 요즘 내가 참 건강하구나 호르몬의 영향도 덜 받고.’라고 생각할 정도다. 남성들도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 수록 증가하는 여성호르몬 때문에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아직 나이도 들지 않았고, 남성도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빠가 있긴 하다.
오늘 나의 왈칵하는 마음은 호르몬 때문은 아니었다. 저녁과 디저트를 먹고 하루의 마무리로 딱이다 할 전쟁영화를 틀어놓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돈 문제, 계약서 문제 등으로 하루 종일 잔잔바리 스트레스가 쌓여있던 터라 과자도 두 봉지나 사서 나름 완벽한 저녁을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이메일을 열었다. 며칠 전 본 제작지원 면접에 떨어졌다는 메일이 도착해있었다. 사실 1차에 붙었다는 것부터가 감사한 일이었다. ‘그럼 그렇지.’ 짤막히 적힌 면접 평을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다시 보고 있던 넷플릭스 전쟁영화를 재생하는데 코 끝이 찡해지더니 윗입술이 뜨거워졌다. 분명 ‘그 메일 때문은 아니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시 메일함 창을 열었다. 가슴에 찌릿하는 문장이 있었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또 다른 메일이 왔다. 이번엔 작년에 진행했던 독백 대회에 관한 안내문이었다. 이 독백 대회를 통해 참 소중한 인연을 많이 얻었지만 대회가 치러졌던 전 날은 살아오면서 많이 힘들었던 날 중 하루였다. 많이 울었고, 아팠던 다음날이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은 아니었다. 사실, 잊고 싶었다. 작년 연말 이후로 연락이 없던 대회 측이 하필이면 오늘 메일을 보냈고, 나는 두 메일을 번갈아 읽으며 지금 이 뜨거운 얼굴의 열기는 왈칵하는 마음임을 인정했다. 선물 받은 샹그리아를 전부 잔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홀짝홀짝 마셨다. 이제 진정하고 앉아서 이유를 물어야 할 때였다.
왜지, 거절당하는 것에서 오는 슬픔인가?
연출로서도 배우로서도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도 동의해서?
위로를 받고 싶은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런 어린애 같은 마음이 든다는 게 창피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이까짓 일에 내가 견고히 다져놓은 균형이 무너지는 게 짜증 나서 혹은 두려워서?
결론은 나지 않았고 그다음 날엔 계약서 문제를 처리하러 상암에 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오늘은 논현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에서 연기 스터디를 아주 열심히 했다. 그리고 강남역 교보문고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한 권 반의 책을 읽었다. 나머지 반 권은 또 다른 왈칵하는 마음이 들 때, 걷기보다 읽기가 끌릴 때 가서 읽을 것이다. 68페이지. 접을 수 없으니 페이지를 외워둔다.
한 권 반의 책을 읽는 동안 옆자리 사람이 자주 바뀌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들의 표정이나 기분을 예측하진 못했다. 하지만 몇몇은 독서에 아주 필사적이었다. 순간이어도, 필사적인 마음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
이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지, 지금 딱 이곳에서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혹시 왈칵하는 마음 때문일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독서를 속으로 조용히 지지했다. 그들도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음으로서, 나의 독서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낯선 이들과의 일시적인 유대가 가벼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