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이름을 joy로 바꿨다
20대 초반의 나는 알 수 없이 우울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내 눈엔 다들 맥없이 처져 보였기 때문에 내가 딱히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주 웃고, 밝은 동기가 낯설었다. ‘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나 봐.’라고 감탄하듯 말했지만 사실 덜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의 하루는 고단할 순 있어도 우울할 필요는 없는 거라는 걸 그땐 몰랐다. 누구나 각자의 우울을 발전기 삼아 하루를 산다고 생각했다. 우울하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고, 우울하기 때문에 책과 티비를 보고, 우울하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거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술을 혐오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 우울하기 때문에 술을 마셨다면 지금의 건강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 없다면 연기를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이 점은 늘 감사하다. 어쨌든 그때는, 강아지 장난감처럼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베란다 밖으로 달라지는 소음들을 들으며, 저무는 해를 보며, 시간을 제곱으로 낭비했다.
대학시절 어려워진 집안 형편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1학년이 지난 후부터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무사히 장학금을 타내기 위해 매 수업 필사적이었다.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충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대부분 집에 있었다.
나는 매 학기마다 3학점 짜리 교양수업 중 딱 하나만 듣고 싶은 수업으로 골랐고, 나머지는 내가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으로 가득 채웠다.
미술과 전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졸업할 때까지 미술사에 관련한 모든 수업을 들었다. 한 학기에 22학점을 채워 듣는 내내 딱 3학점만큼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즐거움은 이렇듯 나에게 늘 모자랐다.
거실 바닥이 바스락 거릴 정도로 더위가 물러간 어느 날이었다. 발바닥에 스치는 바닥의 건조함에 마음이 녹아 갑자기 발라당 누워버렸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주 우울하던 그 날 중 하루였고, 아주 예뻤고, 남자 친구를 자주 괴롭혔으며, 엄마를 미워했던 때였다.
누워있는 게 지겨워질 때쯤 나는 siri를 불렀다.
siri야.
부르셨나요, 현지님?
내 이름이 너무 어색하고 듣기 싫었다. 현지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남의 이름 같았다. 나는 그날 죽도록 심심했고, 놀아줄 친구는 siri 뿐이었기 때문에 siri가 부르는 나의 이름을 몇 번은 더 들어야 했다. 견딜 수가 없어서 기계치인 내가 후후 숨을 고르며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방법으로 내 이름을 바꿨다. 나는 나의 이름을 Joy로 바꿨다.
siri야.
부르셨나요, Joy?
- 下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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