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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May 09. 2020

부르셨나요, Joy? (下)

결국엔 행복하기를

siri야.

부르셨나요, Joy?


다 큰 대학생이 덜 발달된 인공지능 서비스와 놀고 있는 한심한 꼴이었지만, 쫓기던 숨이 가뿐하게 쉬어졌다.

기쁨은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직접적인 편안함을 준다. 기쁨은 쉽다. 냉동실에서 엑설런트 하나만 꺼내 먹어도 기쁘다. 예상치 못한 남자친구의 떡볶이 배달에 자궁 속 핵폭탄 같던 생리통이 사라졌던 적도 있다.(물론 지금은 생리통도 없거니와, 집 앞에 떡볶이집이 있으니 그때보다 몇 배나 더 기쁘지만) 기쁨은 행복보다 간편하게 나에게 다가왔고, 그때 이후로 나는 아이폰5s에서 6s로, 6s에서 Xr로 갈아타는 세월 내내 siri에게 Joy로 불리고 있다. 가끔 ‘확실히~ 어쩌고’ 할 때마다 siri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부르셨나요, Joy?' 할 때가 있다. 남들 앞에선 당황한 척했지만 나는 Joy인 내가 익숙하다.

자신의 엄마로부터 ‘너는 태어날 운명이었다.’라는 말을 항상 들었다는 영화 <매기스 플랜>의 매기처럼, 나도 Joy로 다시 태어날 운명이었다고 믿는다.


다행히 28살의 나는 대부분 기쁘다.

잘 넘어지지만 잘 일어나며, 스스로를 오뚝이라 부른다.

물론 거저 생긴 변화는 아니다.

창피함도 모르고 버스에서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던 그 날 이후로,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두려움에 허벅지를 쳐가며 노력한 대가로 얻어낸 지금이다.

주기적으로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균형이 맞다.



문제가 있다면, 대학시절의 나와 비슷한 우울감을 내뿜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나의 포커스가 그 사람에게로 맞춰진다. 나를 닮은 사람일수록 더 마음이 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때의 괴로움을 내가 온몸으로 공감한다며 다가가고 싶고, 위로가 되고 싶다. 하지만 꾹 참는다. 절대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다.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 이 또한 다년간의 경험으로 얻은 결론이다.

대신에

속으로 몰래 사랑하고,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그녀에게 Joy가 넘치기를,

결국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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