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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Apr 26. 2020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안전수칙

고통을 잊지 않기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의 안전수칙

어느 경험 이후로는 나를 지킬 안전막을 꼭 세우고 나서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 깊어질 때는 자꾸만 한 손으로 마음을 더듬어 안전막이 아직 잘 있는지를 상시 확인한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남이 아닌 나임을 이별이라는 뼈를 깎아내리는 고통으로 알아낸 후에야 나는 이 안전막을 세웠다. 안전막은 나를 세우는 버팀목이자, 나를 무너뜨릴 사람을 막아내는 방패다. 안전막의 경계쯤에서 누군가가 얼쩡거릴 때, 경계 신호가 울린다. 얼마의 세월과, 어떤 고통으로 얻어낸 것인데 고작 새순 같은 갓 태어난 사랑이 허물 수는 없다. 새사랑보다는 내 경험이 더 진짜고 현실적이다. 어차피 둘 다 형태가 없는 거라면, 새로 다가오는 기쁨과 설렘보다는 고통을 주었던 경험 쪽을 믿는 게 인간의 모지리 같은 습관이다. 아니, 나의 습관이다.


너와 함께 보낸 오늘,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을 더듬으며 안전막이 무너지지 않았는지 자꾸만 확인했다. 손 끝에 감각이 무딘 것 같아 눈을 꼭 감고 시각의 힘까지 더해서 촉각을 끌어올렸다. 아직 물컹한 안전막이 제자리에 있었다. 다행이었다. 새순 같은 사랑이 어느새 나무처럼 자라서 나의 안전 범위를 침범하게 될까 봐 두렵다. 겨우 붓을 든 노인이 그린 수채화처럼 옅은 초록으로 물들었던 봄의 산은, 잠깐 시간에 휘청이고 바라보면 어느새 심해처럼 푸른 녹색을 띤다. 여름은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재킷을 사지도 못한 채 금세 찾아오고, 봄의 설렘은 사라진다. 소중했던 따뜻함은 더위가 돼서 땀과 짜증을 불러온다. 내 새순 같은 사랑도 시간의 영향을 받을까 봐 두렵다.


사랑의 존재가 다차원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글을 본 것 같다. 이 엄청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뒤틀린 곳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힘은 시간, 공간, 한 사람의 목숨을 뛰어넘을 만큼 크다. 안전막은 거뜬히 찢어질 것이고 나를 지탱하던 힘은 어느새 사랑의 힘에 기대서 복종할 것이다. 다 알면서도 자꾸만, 이번에는 아니길 바라는 내가 바보 같다.




차라리 사랑 않고,

혼자 서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무너지는 기분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뭇가지 끝에 돋아난 새순이 너무 단단해서

어쩐지 이번만큼은 낙엽이 되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랑의 존재가 다차원을 입증하듯

나의 이 새순 같은 사랑이 시간을 이겨서

땀 흐르듯 눈물 나는 여름,

식어버린 관계 같은 가을,

둘 사이에 태어난 모든 것을 얼리는 겨울을 오지 않게 하기를 또 모지리처럼 바란다.  


버티고 버텼던 말라빠진 낙엽이 한숨 같은 바람 한 번에

똑. 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날이 사랑이 시간에게 진 날이다.

봄이 오기 전까지 땅에 녹아드는, 그러니까 또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겪는 것이다.

새사랑보다 고통의 경험을 믿는다는 말은 이렇게나 힘이 없다.

다 알면서도 사랑 쪽에 나는 자꾸 기댄다.

작게 뚫린 안전막에 손가락을 끼워 넣어 꼭 막은 채

나는 또 이 짓을 반복한다.


왜냐하면

내 몸이 봄이 되어버리니까.

나의 매일매일의 일상이 새것처럼 낯설고

꽃망울 터지듯 피어나는 감정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니까.

너에게 물드는 내가 좋다.

이 사랑이 과거의 반복이 아닌,  

또 매해 돌아오는 봄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나는 믿는다.

다만, 똑. 하고 떨어진 이후로 비와 바람에 가루가 됐었던 우리가

다시 새순으로 태어나기까지 겪었던 고통을 잊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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