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무덤덤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생산적인 일도 하고, 장도 보고, 요리도 했다. 적극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장보기를 변형 걷기 운동쯤으로 여기고 코너마다 샅샅이 구경하길 좋아하지만 오늘은 핵심 물건만 사고 회차 시간 내로 마트를 빠져나왔다. 마찬가지로 평소라면 완벽한 두부 가지 라자냐를 완성하기 위해 치즈를 뿌리고 올리브도 잘라서 올렸을 텐데, 오늘은 토핑은 뺐다. 핵심 재료만 켜켜이 쌓아 올린 후 사진도 찍지 않고 먹기 좋은 크기로 쓱쓱 잘랐다. 맛있었지만 기쁨은 없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맥주 한 병을 사 왔다. 역시나 세 모금 정도 마시니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차 마시듯 천천히 음미하기엔 탄산이 기다려주질 않는다. 차가 식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미지근해지는 맥주 자식. 그냥 자기엔 오늘이 아깝고, 먹고 마시기엔 배가 부르다. 별 수 없이 운동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가 업로드되는 날이다. 이어폰보다 마스크를 먼저 낀다. 답답함에 집을 뛰쳐 나섰다.
오늘따라 팟캐스트가 왜 이렇게 웃긴지, 세 모금 마신 맥주 덕분인지 언니들의 컨디션이 좋은 건지 걸으면서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늦은 시간이라 나를 경계하는 여성분들에게 죄송해서 통화하는 척 몇 마디 중얼거리며 또 깔깔 웃었다. 삽시간에 좋아지는 기분에 하는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뛰기 위해 첫 발을 힘 있게 내딛는 순간마다 늘 교복을 입고 학교로 뛰어가던 때가 생각난다. 살면서 뛰었던 많은 순간 중에 왜 늘 그때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뛰기는 싫지만 지각은 더 싫었던 때의 속도로 탄천을 열심히 뛰었다.
사실 희로애락 중 어느 것이라도 정확한 감정을 느끼는 날이 오늘 같은 날보다 낫다. 무덤덤한 날들이 계속되면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이 소실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속'은 굉장히 중요하다. 지속은 '버티는 것'이고, 버티는 것이 요즘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중에 <파테르>라는 작품이 있다. 이상환 감독, 이한주 주연의 27분짜리 단편영화다.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같은 해 열린 영화제는 대부분 갔던 걸로 기억한다. <파테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레슬링에서, 수동적인 경기 운영으로 반칙이 선언되었을 때에 두 선수가 취하는 자세'라고 한다. 비교적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던 선수가 바닥에 꽅 붙어서, 상대 선수가 점수를 따내지 못하도록 버텨야 한다.
무국적자인 레슬링 선수 오성은 전국체전을 나가기 위해 꼭 이겨야 하는 상황 속에서 버티고 또 버틴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애초에 반칙 선언을 받지 않기 위해, 수동적인 태도로 경기에 임하지 말지 그랬냐는 말은 삼키자. 나플라의 <혼자가 편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You never been in my nike pairs
You never been in my shoes
모르지 뒤에 따르는 노력들
나는 남을 모르는 거다.
영화가 이래서 좋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화의 조각들이 나의 오늘을 버티게 해 줬다. 오늘의 버티기 숙제 끝. 걷고 달린 덕에 잘 잘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