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자친구가 아버지와 나누는 통화를 듣고 놀랐던 날이 있다. 부자간의 바른 통화에 대한 교본이 있다면 딱 그 안에 적혀있을 법한 대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은 듣지 못했지만 명자의 리액션을 보니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한국 아버지의 캐릭터 같았다. 잠잠히 들어보니 명자의 애씀도 느껴지긴 했다. 물어보고, 웃어주고, 걱정해 주었다. 나에게 하는 노력처럼 사랑을 담아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저렇게 애쓰지 못할까 나의 아빠에게. 왜 애써 물어보고, 웃어주고, 걱정해주지 않을까. 자려고 눕기 전 이제는 정말 끝까지 온 것 같다는 아빠의 톡을 보니 이 모든 생각이 장마철 물이 차오르듯 순식간에 몰려왔다.
톡을 보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 이런 카톡을 받았을 땐 혼비백산 놀라서 아빠를 찾았던 20대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나름의 노하우로 전화를 걸어 위로, 비판, 격려의 포맷으로 대화를 마쳤다. 나름의 애씀이었다.
사진은 아빠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제는 나와 사랑이의 보호자 역할을, 그러니까 아빠 역할까지도 자처하는 명자와 함께 아무런 걱정 없이 쿨쿨 자는 사랑이가 사랑스러워서 골랐다. 성경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다. (살전 5:16-18) 이런 상황에서 기뻐할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봤으나 쉽지 않아 감사로 넘어갔다. 감사가 더욱 쉽지 않아 감사 노트를 펴냈다. 펜을 들어 쓰려면 뭐든 써지겠지 싶어서였다. 분풀이하듯 감사를 갈겨쓴 게 어제의 일이었다. 오늘 다시 펴보니 꽤나 진심인 감사가 가득이다. 그중 제일은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였다. 연말을 맞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정말 감사다. 어제의 감사가 오늘 기쁨이 됐다.
오늘 아빠에게 애써서 톡을 보냈다. 이 일이 나중의 기쁨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