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출장을 다녀왔다. 일 년 간 만들고, 수정하고, 고민했던 영화의 마지막 수정 작업을 위해서였다. 마침 하루 시간이 나는 금요일로 약속을 잡은 후에 srt앱을 켰더니 대부분 만석이었다. 예약을 걸어둔 후 어렵게 예매한 표의 시간은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오후 10시에 돌아오는 표였다. 1시간이면 끝날 작업인데 남은 시간에 무얼 해야 하나. 대구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지만 겨울의 도시는 어디든 춥다.
예상대로 일찍 끝난 작업 이후로 대구의 핫플을 다니며 이 시간을 즐기려 안간힘을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이라 치자며 나를 속였지만 금요일 저녁은 너무 피곤했고, 추웠고, 핫한 카페는 등받이도 없었고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솔솔 들어와 손이 시렸다. ‘이거 아닌데…’
마지막으로 찾은 독립서점에서 히터바람이 좋았던 건지, 책이 좋았건 건지 모르겠지만 한 시간을 버텼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찬 바람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명자의 퇴근 시간이 다가왔길래 나는 괜찮다며, 마중 나오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으려 고심하며 쓴 톡을 보냈다. 마음을 다치지 않게 거절하는 스킬 꾹꾹 담아서. 나의 늦은 귀가가 신경이 쓰이는 그의 마음은 일지만 수서에서 우리 집은 10km 이내고 그의 집과는 30km가 넘는다. 그리고 금요일 밤은 누구나 쉬고 싶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마중을 나왔다. 다음날일 토요일에도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고, 그 후로 교회 일정이 있음에도… 나는 이럴 때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커진다. 빚이 생기는 기분이고, 괜히 눈치를 보게 되서다. 일단 이 날은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그의 피곤함이 가시지 않아 보였던 건 내가 그렇게 정하고 봐서일까.
다음날 명자는 퇴근 후 나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해 전했다. 서로가 다 정도가 다르겠지만 나에겐 어제 같은 상황에선 미안함이 고마움을 넘어서 마음이 불편했다고. 그래서 감사를 감사할 수 없다고. 그러자 명자는 ‘마음에 담아두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미안함과 감사 중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무엇이든 마음에 담았다가, 그 마음으로 자신을 봐 달라고 말했다. ‘표현해 달라’고 말했다면 딱 그게 싫다고 말하려 했는데 '봐 달라'면… 할 수 있겠다. 헷갈리는 이 감정을 담아 이 바보 같은 명자를 보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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