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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제니 Feb 01. 2023

낡은 서랍 속의 오래된 기록

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 라떼의 묵은 여행기

    더 이상 '여행 가이드북'이란 것을 사지도 보지도 않게 된 시대에, 검색도 해시태그도 없이 수백 쪽에 걸쳐 깨알같이 적힌 수천 가지 정보를 공들여 찾고, 접고, 밑줄을 긋고, 별표 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가이드북에 분명히 맛집이라고 소개돼 있는 식당을 찾아갔더니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아무 것도 없기도 했고, 흑백으로 인쇄돼 있는 사진만 믿고 찾아간 숙소가 도저히 몸뚱이를 누이지 못할만큼 남루하기도 했고. 한 손바닥 안에서 온 세상의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막힌 일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게 여행이었다.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곳에서 또 가이드북을 열심히 뒤적여 '간단 회화' 코너를 찾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억양, 발음 그런 거 따질 겨를도 없이 "xx에 어떻게 가나요?"라고 더듬더듬 말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동무와도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어 몇 시에 어느 광장, 어느 동상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또 그 시각 그 장소에 동무가 나타나지 않으면 애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고, 인천공항에서 미리 산 국제전화 카드로 공중전화에서 집에 딱 1분씩만 건강히 잘 놀고 있노라고 애틋한 안부전화를 하고, 그나마 공중전화마저 없는 곳에서는 손짓 발짓으로 물어 물어 허름한 인터넷 카페를 찾아 영어로 Dear mom and dad, how are you? I'm doing fine 이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로, 노래는 mp3로 듣고, 지도는 종이로 보던 시절. 그런 시절이 있었다.


    벌써 15년이나 지난 여행의 기억은 희미하다. 하지만 어딜 가든 손에 들고 다니며 열심히 찍었던 4:3 비율의 사진과 영상들로 여행의 장면- 장면-들을 되살려본다. 차곡차곡 모아 노트에 정갈하게 붙여놓은 온갖 영수증들이 나를 이국의 호텔과 식당으로 데려가고, 가끔 밀리고 빼먹더라도 여행 내내 썼던 일기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던 내가 느꼈던 감상을 생생히 들려준다.


    낡은 서랍 속 오래된 기록을 꺼내어 기억을 보태고 다듬어, 지금은 추억이 된 나의 경험을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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