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life and Prejudice
2016년 1월 28일, 멜버른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예중에 진학한 저는 더 넓은 시야를 보고자 외고에 진학하여...". 내 수시 대학입시 원서는 대충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예중에서 예고가 아닌 외고로 갔지만 내 삶의 대부분에는 사실 미술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사실상 지금도 미술사 공부를 하고 있으니 아직도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예중을 나왔다. 미술을 전공했었고 조소나 아크릴보다는 수채화나 콘테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전만큼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펜이나 연필을 잡으면 끄적이는 습관만 여전할 뿐이다. 몇 달 전 친구들과 크로키를 하러 간 날을 빼놓고는 최근 몇 년간 제대로 앉아서 그림을 그려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처럼 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내가 예술가가 된 방법(영어)'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천한 글인 데다가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쓰는 글도 그렇지만 글의 제목이 내용을 대변하지는 않기에 딱히 크게 기대하지 않은 채 읽기 시작했다.
미술을 단순한 취미로 시작한 작가는 어쩌다 보니 미대에 갔고, 어쩌다 보니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고 하는 꽤나 심심한 글이었다. 본인의 포트폴리오 속 작품들을 넣어가며 본인이 밟아온 길을 무덤덤하게 설명해나갔는데, 취미로 시작했던 끄적임에 노력이 더해져, 명망 높은 미대에서의 강도 높은 수련을 통해 발전해 나간 모습이 그의 작품에서 묻어났다. 그런데 글을 읽어내려가다가 미처 전문 예술가가 된 단계를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취미가 직업이 되었다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오늘은 그림을 그려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뜩 들었다. 씻지도 않은 채 자전거를 타고 미술 용품점으로 향했다. 도화지 몇 장과 색연필 하나를 사가지고는 집에 돌아와 차고 문을 열어 바람과 햇빛이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짙은 도화지 위에 하얀색 색연필로 수묵화를 재해석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아이패드로 참고할 만한 그림들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색 색연필이 규칙적으로 짙은 남색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듯, 빈 공기를 경쾌롭게 메워 나갔다. 얼마 전 집안일과 명상의 상관관계에 대해 글을 썼는데 사실 내가 명상이란 것을 알기 전에 이를 경험한 건 그림을 그리면서 였나 보다. 집중을 하면서 생각이 들었다가 곧 저너머로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렸을 때 다닌 화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흔히 정물화를 그릴 때 우리는 사실 정물을 거의 보지 않는다. 특히 대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을 그리기 때문에, 코 앞에 놓여있는 사물을 보는 대신 머릿속에 있는 사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릴 때가 많다. 기억은 곧잘 왜곡되며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결과물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 열두 살이 채 되지 않은 우리들에게 벌써 익숙해진 이러한 관찰방법 - 사물을 보지 않으면서 ‘보는’ 방법 - 에서부터 벗어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다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아직도 그 습관이 남아있는지 살피게 되었다. 사실 당시처럼 보이는 것 그대로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재해석하는 그림이었기에 딱히 제약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선을 긋고 명암을 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을 보는 대신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을 골라서는 머릿속에 이미 있는 선입견으로 판단을 내리곤 한다. 예컨대 그 사람의 피부 색깔, 성별이나 말투, 옷차림 등의 첫인상으로 즉각 드러나는 모습들을 토대로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 배경 등을 판단해 버린다. 그렇지만 마치 내 생각으로만 그려낸 정물화는 왜곡되어 나타나듯이, 내 머릿속에서 골라낸 생각들로 상대방을 그려낸다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며 내가 느낀 한 가지는, 그 사람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실상 한 사람의 존재에 상상 이상으로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나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말하는 ‘A이기에 B이다’식의 선입견과 판단과 달리 각자 그들만의 짙은 색을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나와 피부색이나 머리색, 자라난 환경이나 장소가 천차만별인 친구와 놀라울 만큼 비슷한 점이 많이 신기해하기도 했던 것처럼 내가 보고 들으며 자란 말들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케이스들이 쌓여만 갔다.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특징을 너머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니 만약 내가 피부색과 같은 생김새나 억양 등에 의해 섣불리 판단을 내렸다면 미처 몰라보았을 법한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겉모습으로는 참 이질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정물화를 그릴 때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적힌 곳이었다. 이를테면 위스키 병의 상표 같은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도 뻔한 글씨로 장식되어 있었기에 한두 번 보고 나서는 내 머릿속에 저장된 글씨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리게 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만큼 너무나도 당연한 특징일수록 자연스럽게 그 특징에서 비롯된 선입견에 근거해 쉽사리 판단을 내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금세 닳아버린 하얀색 색연필을 깎아내면서 생각했다. 아직도 혹시 색안경을 쓰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포장되어있는 상대방의 겉모습에 가린 상대방의 진정한 모습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Since I was young I loved painting. While I went to an art school for my love for drawing I proceeded to an academic high school to broaden my perspective…”. This is pretty much how my personal statement for the university application began. Although I didn’t continue my art studies, as I chose an academic high school instead of an art high school, art has always been a big part of my life. In a way it still is, as I am studying art history.
I went to an art school when I was 12 to 15 years old. While I mainly painted and drew, I preferred watercolor or conté over sculpture or acrylic paint. Today, however, I don’t paint as much as I did then. I still have a habit of doodling when I have a pen or a pencil, but excpet for that one evening I went to do a life drawing with friends in Melbourne, I can’t recall any recent days that I’ve sat down properly to paint or draw.
As always, I started today by reading other people’s writings. I stumbled across an article ‘How I became an artist’. More than 2000 people have recommended the article and I was curious how someone managed to make a living by making art. Well, to be fair, I was also aware that the title doesn’t do much justice to its content — just like my writings — so I actually didn’t have much expectation.
While art was just a hobby for him, he somehow ended up in an art school and somehow became a profesional artist. It was rather a dull read to be honest. He illustrated his journey with images of artworks from his portfolio, which did make it slightly more interesting. I could sense the progress that his artwork has gone through, from doodling as a mere hobby to something that embodied the intensive training in a renowned art school, along with his hard work. Yet, even before I read the part where he became a professional artist, I ran out of my room.
Reading an artist’s reminiscent story on how he turned his hobby into his job made me want to draw something today. So I skipped the shower, got on my bike and cycled off to an art supplies store. I picked up a few drawing papers with one watercolor pencil and came home. I found myself a seat in a garage with the open air and some sunlight. Then I looked up some Chinese ink paintings for reference on my iPad, so that I can reinterpret them on a dark-colored drawing paper with a white watercolor pencil.
A white watercolor pencil slipped through a dark navy colored paper, filling in the void in a rhythmical manner. I wrote about the correlation between housework and meditation 2 weeks ago, but I realized that I have experienced meditation through drawing, even before I knew what meditation was. While concentrating on my action, random thoughts would come up and disappear, followed by new sets of thoughts.
Drawing brought back memories from the days that I spent painting in an art studio when I was 11. When we painted still-life, we rarely saw the object in front of us. Especially because we choose the familiar objects to paint, we would rather recall an image of that object in our mind and draw that imagery, instead of looking at the objects right in front of us. Yet, since memories are easily distorted and inaccurate, drawing in such method would inevitably render an equally distorted and inaccurate outcome. However, even for a kid who was barely 12 years old, it took quite a long time to break away from such a way of seeing — ‘looking’ without really looking at an object.
As the memories of those days struck me, I checked whether I still have such a habit. Well, I wasn’t doing a one-t0-one copy of a still-life this time because I was reinterpreting an artwork. So technically I wasn’t really bound to that notion. Still, while drawing lines and contouring the surfaces repeatedly, another thought occurred.
Many times when we see a person, we judge him/her by linking his/her ostensible qualities with the prejudice that exists in our mind, instead of looking into his/her truthful side. For instance, we easily make a judgment by one’s skin color, gender, manner of speaking, or attire and gauge that person’s personality, tendency or background. However, just like how still-life drawn from one’s memory is often distorted, painting someone with the selected thoughts in one’s mind hinders one from seeing the real side of that person.
One thing that I have realized over the past few years of meeting and spending time with people from all around the world is that where someone is from, or how he/she looks like is so much more insignificant than we think it is. Unlike the bias that the Korean society and media repeat by saying ‘because one is A, one must be B’, everyone had his/her own idiosyncratic color. I kept meeting people that falsified those beliefs and preconceptions I grew up with, just like the similarities between my French friend and I despite a number of disparate factors we share, like skin and hair color, place of birth and environment we grew up in. Such ostensible differences could not have been more irrelevant.
As I understood a person beyond his/her ostensible qualities, aspects that I would have overlooked if I had made any judgments from qualities like his/her skin color or accent began to reveal themselves. Thanks to such understanding, I was able to talk to and become friends with people who are different from the way we look. I am still good friends with many of them.
When drawing a still-life, one had to be extremely attentive when there were letters that he/she could read and understand. For instance, the label of a whiskey bottle embellished with characters or words that we are familiar with made us to draw from our preconceived knowledge after looking at the real object only a few times. It was easier to make a judgment from the stereotypes, especially when the qualities were too obvious.
So today while sharpening my white watercolor pencil that wore out too soon, I asked myself once again; Am I still looking at someone with a jaundiced eye? or am I neglecting the real side of a counterpart just because I am clouded by his/her appeara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