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너보다 더 나를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나를 위해 하려는 말은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by 별난애

가끔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다른 선택을 하는 상대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선택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나와 연관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나 나와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오지랖일지라도.


사실 ‘상대방을 위해서’도 있지만 나를 위한 것도 있다. 당연하게 나올 결과에 당연하지 않은 선택을 하고는 당연한 결과가 나오면 상대방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할 때마다 너무 답답해서 -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그 당시 그런 선택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기어코 이런 상황을 만들었기에 나는 답답해서 “그러니까~“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러니까 내 말 들으라니까, 그러니까 왜 그랬어” 다 너를 생각해서 한 말인데 듣지도 않더니 이렇게 돼서야 몰랐다고 하는 게 속이 터졌다. 이렇게 안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기대를 할 수 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 당연한 결과라는 걸 굳이 강조하면서 같잖은 조언들을 내뱉었다. “이건 다 너를 생각해서 한 말이야, 네가 잘되었음 하는 마음에.” 이 말 한마디로 꼰대라고 지칭하는 사람의 마음과 의도가 정확하게 이해해 버렸다.


그렇게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나름 열띤(?) 대화가 시작되었다. 서로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기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왜 그런 ’ 생각‘이 들었는지는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생각의 차이만 뚜렷해졌고 서로 생각하는 게 너무 달라 느껴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의미 없는 쳇바퀴만 계속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말하고,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한, 제일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면 ‘너를 위한 마음‘ 이 있다. 나에게 피해도 이득도 없는, 오로지 너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걱정이고 조언이다. 그렇다면 이런 언쟁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너를 위함’이라는 조건만 없어지면 된다. 어떻게?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너보다 더 나를 생각해”


내가 답답해하고 분통이 터진 이유는 ‘네가 네 생각을 좀 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네 인생에 그 선택보다 이 선택이 나으니까. 하지만 내 말에는 2가지 오류가 있었다.

첫째,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것. 둘째, 내가 걱정하고 있는 인생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는 것. 물론 내가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한 말까지 미처 생각을 못 할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더 나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감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자기 인생에 일부러 덜 이득인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너를 아끼고 생각하고 위한다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들의 삶의 주체는 그들이고 그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그들이다. 대신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주겠다 하고 나 몰라라 하면 끝이고, 책임져주다가 포기해도 결국 그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인생의 주체자에게 돌아온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책임은 누구한테 있다고 생각하는가. 책임진다고 해놓고 가버린 사람? 아니면 그 사람을 믿은 그?


만약 가버린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를 위해서 대신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가 당신이 아끼는 존재라고 한다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일을 책임져줄 수 있는가. 생각보다 대신 책임져주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때 치는 사고 같은 경우 ‘어려서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대신 책임져줄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어릴 때 많이 하는 말장난의 경우 대체적으로 사과를 시키게 하거나 대신 사과를 하거나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어 성숙해지면 어릴 때 하는 장난이나 사고는 치지 않을 것이라 책임져줄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성인이 된 후의 일이 대체적으로 더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다.

어릴 때의 말장난이 커서는 주먹다짐, 폭행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거고, 혹은 잘못된 계약으로 고액의 위약금이 발생하거나 재차 확인했음에도 사기, 사건에 휘말 일 경우. 자기 자식과 혹은 가족, 내 주변의 지인들은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을 사람이다 해도 ‘일부러’가 아닌 ‘모르게 ‘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럴 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러한, 또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만약 그런 일이 생길지 몰랐다고 하면 대신 책임져줄 텐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답답한 마음에 왜 이런 것도 확인 안 해봤냐 뭐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는 이러고 싶어서 그랬겠나”라고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 할 만큼 한 거다. 만약 내가 보기에 부족한 것 같다 생각이 들면 부족하지 않을 때까지 직접 도와주면 된다. 또는 해결될 때까지. 말로만 뭐라 하지 말고, 벌써 일어나 버린 일을

들춰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따진 들 뭐가 달라지나.

나도 이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탓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했니, 그게 아니고 이거다’라고 말하고 싶으면 내가 대신해 주면 된다 - 그렇게 답답하면 내가 대신하면 될 일이다.

만약 그러고 싶지 않으면 탓하는 대신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나누어보는 것이 현명하다. 어차피 결정은 그들이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되었으면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가족 | 절대 쉽게 선택하지 않았던 ‘절연’